도피성의 은혜 (수 20:1-9)
도피성의 은혜 (수 20:1-9)
이 시간에 “도피성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위험에 처할 때 우리가 피할 곳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잘 아는 대로 보트 피플이라 해서 베트남이 공산화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가 받아주지 않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죽어갔는지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제력이 있는 경우 핵전쟁에 대비하여 지하 벙커를 마련한다든지 더 안전한 나라로 이주한다든지 등의 도피처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중 한 예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요르단의 고대유적지인 페트라(Petra)도 그 중 하나입니다.
페트라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산악 도시로 페트라 입구는 그 폭이 3m도 채 안 되는 거대한 자연 절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협곡이 1km 이상 이어져 있어 사람들은 이곳이 대환난 중에 피할 곳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피할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예수가 반석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이 지상에서 피할 곳이 없습니다.
시18:2-3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피할 곳을 내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한한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발견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도피성은 부지중에 오살한 자를 위한 특별한 보호처로 요단 동쪽에 세 곳 서쪽에 세 곳 모두 6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도피성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예표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 피하는 자에게 주실 은혜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 피하는 사람에게 어떤 복이 있을까요?
1. 거룩해지는 복이 있습니다.
도피성에는 갈릴리 게데스의 도피성이 있습니다. “게데스”는 히브리 말 ‘카도쉬’에서 온 말로써 그 뜻은 “거룩”을 의미합니다. 거룩은 구별과 성결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 구별과 성결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별히 구별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피로 용서를 받고 그의 성령으로 인격이 성결해집니다(엡1:7). 그래서 고후5:1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거룩하고 싶습니까? 예수 믿고 그의 영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인류가 죄를 이겨보려고 수천 년 동안 수양과 도덕과 각종 종교를 만들었지만 다 헛수고였고 예수 믿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한 구도자라면 그 헛된 것 다 버리고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도자입니다.
2. 예수님께 피하면 짐을 내려놓는 복이 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이라는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세겜”이란 ‘어깨’를 의미합니다. 구약 사람들의 물건 나르는 습관은 어깨에 메는 것이었습니다(사9:6).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님께로 오면 우리의 모든 짐을 다 져주신다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하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예수님께 가까이하기만 해도 마음의 짐이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것을 힘들어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고통을 당해도 마음에 예수가 있는 사람은 힘들지 않는데 예수가 없는 사람들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신세를 한탄하고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진실로 예수님께로 돌아오면 우리 마음의 짐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도 다 져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저주와 염려와 근심과 수고한 삶의 무거운 짐까지도 다 맡아 주시고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도피성 되신 예수님께 피하는 자가 받는 은혜입니다.
3. 예수님께 피하면 신령한 교제가 있습니다.
유다 산지의 헤브론이라는 도피성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헤브론”은 ‘하바르’라는 말인데 이는 연결(joint)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납니까? 간단해요. 예수 안에만 오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모든 것의 답이 예수예요.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를 보는 것이 아버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습니다.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사귐도 예수 잘 믿으면 대인관계에 자신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 만나게 하시고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요일1:3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했습니다. 혹시 여러 방향에서 막히시는 분 계시면 예수 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4. 예수님께 피하면 승리의 복이 있습니다.
르우벤 지파에 베셀이라는 도피성의 있습니다. “베셀”이라는 말은 ‘요새지’를 말합니다. 요새지란 천혜의 난공불락의 성이거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고 진지를 구축한 곳입니다. 요새지에도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 있으면 어떤 시험도 악마도 핍박도 절망도 덮쳐 올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시험이 와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다 이길 수 있어요. 찬송가에 “만세만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 대고 환난풍파 없도다” 하지 않았습니까?
마귀보다 세상의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가장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일4:4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도피성 되신 예수님께 피하면 온전한 승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5. 예수님께 피하면 영광의 복이 있습니다.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의 도피성이 있는데 “라못”은 들어 올리고 높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다윗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다윗 같은 비천한 자라도 그 믿음을 보시고 거름더미에서 드셔서 영광스런 위치에 오르게 하시듯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셔서 영광스런 자녀 삼으로시고 높이 되신 예수 안에서 예수와 함께 그 영광과 승리와 복락을 누리게 하십니다.
6. 예수님께 피하면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도피성 중 마지막으로 므낫세 지파의 바산 골란의 도피성이 있습니다. “골란”은 ‘기쁨’ 또는 ‘희열’을 뜻합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 있으면 진정한 구원의 감격과 희열과 참된 평안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 피하는 것이 이 모든 복을 누리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자꾸 딴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다윗도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할 때 다윗은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그럼에도 사탄은 위해 자꾸만 산으로 피해라. 산으로 피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11:1-3에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데서 쏘려 하는도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하나님만이 진짜 피할 곳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피했더니 잡으러 와도 잡지 못합니다. 사람이 환경이 지혜가 이모로 돕고 저모로 돕고 삼상 19장을 보면 잡으러 왔던 사울이 성령의 은혜를 받아 스스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27:1-3에 “여호와는 나와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찬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입니다. 그런데 도피성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피하지 않으면 우리를 쫒는 피의 보수자로 인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목숨을 바쳐 사력을 다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절대 진리에 서고 성령 충만 받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구원과 행복과 평안을 누려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님 떠나는 일이 없이 항상 도피성 되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