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부어지는 일곱 대접 3 (계 16:8-9)

nam씨 2024. 10. 12. 17:35

부어지는 일곱 대접 3 (계 16:8-9)

8.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이 시간에도 “부어지는 일곱 대접”이라는 제목으로 징계의 연단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세계 사람들이 이 작가의 글을 읽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매우 문란했습니다. 작품을 쓰는 시간 외에는 ‘타락’과 ‘방종’과 ‘술’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족들은 어쩌다 그와 얼굴을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가 술에 취하기만 하면 가족들을 향해 고함을 질러댔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1841년 여름, 이 작가가 가장 사랑했던 딸이 세느 강에서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위고는 싸늘한 시체로 변한 딸의 얼굴을 하얀 천으로 덮으며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날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방탕한 삶을 청산하고 경건 훈련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돌아보며 불후의 명작을 집필했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레 미제라블’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셨지만 왜 또 징계를 통한 연단이 필요할까요? 우리의 완악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 크신 은혜를 받고도 완악한 마음 때문에 그 은혜 앞으로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언서의 체벌은 아동교육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나라의 아이들인 우리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연단에 대한 교훈이 계속됩니다. “8.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이 구절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넷째 대접재앙은 대접을 해에 쏟아서 해가 더 뜨거워져서 사람을 태우는 재앙입니다. 마치 태양에 기름을 부은 듯 크게 타올라 사람을 태웁니다. 태양 표면에서 강력한 핵폭발이 일어난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태양의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습니다.


넷째 천사가 해에 쏟은 이 대접은 무엇을 뜻할까요?


1. 연단을 받고 열심 내는 마음을 뜻합니다.


8절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여기 해가 나오는데 성경에서 부정적으로는 시험을, 긍정적으로는 하나님이나 은혜를, 혹은 뜨거움 열심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시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했습니다(눅1:78-79, 마4:16, 시72:5-17, 시89:36, 시84:11). 그러므로 해에 쏟은 대접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향한 열심입니다.


이 지구에서 해의 영향력이란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만약 해가 조금만 지구와 떨어져도 지구 전체는 북극보다 더 차갑게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해가 조금만 더 가까우면 이 지구는 불덩이가 되어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는 지옥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해가 권세를 받아 사람들을 태운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일에는 그토록 열심하면서 하나님을 향해서는 주일 지키는 것 하나도 어렵게 생각한다면 그건 정신 못 차린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징계를 깨달으면 달라집니다.


그래서 고후7:11에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했습니다. 바울은 일차 말씀으로 징계했지만 이처럼 징계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열심을 보세요. 요2:17에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 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한 대로 목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해가 권세를 받아 사람을 태우듯 그 열심이 자기를 불태웠습니다.


바울도 고후5:13-14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도 갈렙도 열심했기에 다른 정탐군들과 같은 잡생각을 다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26:13에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이건 열심 없는 게으른 자의 소리입니다. 연단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신앙생활하게 합니다.


2. 연단은 이방인들의 비방을 몰고 올 수가 있습니다.


9절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왜 비방할까요?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지니까 핍박이 옵니다. 딤후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했습니다. 시편 42편 고라자손들의 마스길에서도 그런 간증이 나옵니다. ‘마스길’이란 교훈을 주는 노래를 가리킵니다.


시42:1-4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즉 현재의 내가 당하는 고난을 보고 전에 내가 전도하던 사람들에게 비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것이 가장 마음 아프지요. 내가 고통 받는 것은 좋지만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을 받거나 타인이 실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너는 왜 그러냐고 핍박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이라 한 것처럼 연단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믿음이 장성하면 장성한대로 거기에 상응하는 연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처럼 연단이 많이 필요한 인생이 되지 말고 이삭처럼 늘 순종하는 자식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징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스스로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9절 하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여기 “회개하지 아니하고”란 회개하라고 주신 것이었는데 회개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역시 영광을 돌려야 할 일인데 돌리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걸 징계에 비유와 연관시켜 보면 징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모습입니다. 징계가 무엇인지 진정 안다면 기뻐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징계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12:5-8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욥7:17-19에도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거기에 맞는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은총입니다. 그래서 약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참고로 위대한 명사들이 고난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비쳐는 말하기를 “고난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로서 하나님의 신임의 증거라고 간주해야 한다.”


리실룩스는 “고난이란 하나님이 친한 사람에게만 주는 선물의 일종이다. 다른 이에겐 고생이 주어진다.”  사무엘 러더포드는 “내가 고난의 통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은 밖에서 최고의 포도주를 기대하고 계신다.” 존 번연은 “당신이 더 나아지도록 당신은 매를 맞는 것이다.”


피터 마샬은 “만일 우리로 하여금 고난으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어떠한 고난도 허락지 않으신다.” 앤 브라드스트리트은 “무쇠는 아주 뜨겁게 달구어졌을 때 비로소 가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를 고통의 도가니로 던져 놓으시길 좋아하시며, 그런 연후에 당신의 모루 위에 자녀들을 놓고 두드리셔서 당신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드신다.”


토마스 왓슨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확한 증거이다.” 로저스는 “연단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믿을 만한 믿음이 못된다.” 몰리노스는 “연단이란 하나님이 그대 영혼을 정화시키고 미화시키려고 채택하신 그의 독특한 방법이다.” 스미스는 “징계는 당신을 더 높은 영적인 차원으로 끌어주는 하나님의 마차이다.”


스펄전은 “하나님이 그 자녀를 풀무에 던지실 때는 하나님도 그 안에 같이 들어가신다.” 알렉산더 맥클라렌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밭 길로 보내실 때는 든든한 장화도 예비하신다.” 빌리 그래함은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은 거꾸러뜨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스럽고 유용한 생애로 우리를 다듬기 위해서다.” 윌리는 “환난은 계시이다. 몰랐던 것을 일러준다.” 모두 성경을 기초로 하고 자신이 체험해 보고 한 말들입니다. 그러므로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우리가 누릴 하나님의 복은 영원합니다. 그 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교회를 통해서 말씀으로 훈련하시고 징계를 통해서 우리 자세와 믿음을 훈련하고 계십니다. 현재의 불만족과 고통이 하나님의 징계의 연단이라고 깨닫는다면 그는 가장 복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더욱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해가 권세를 받아 사람을 불태울 만큼 열심을 내어 주님을 섬기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