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대접재앙 서론 8 (계 15:8)
nam씨
2024. 9. 21. 18:59
대접재앙 서론 8 (계 15:8)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이 시간은 “대접재앙 서론” 마지막 시간으로 ‘십자가 사랑의 결과’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불후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벤허(Ben Hur)라는 작품을 아실 것입니다. 벤허를 남긴 작가 Lew Wallace(루 윌리스)의 회심 이야기가 있습니다. 윌리스는 본래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불신자였고 기독교가 필요 없음을 강조하고 공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의 허구성을 철저하게 밝혀서 기독교를 반박하는 책을 펴내기 위하여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잘못되고 거짓된 부분을 발견하려고 눈을 번득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험하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씀에 이르러서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감격한 윌리스는 영원하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살게 된 후 기독교를 비판하려고 했던 붓을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에 입각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리며. 많은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한 불후의 명작 ‘벤허’라는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늘도 계시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닫고 루 윌리스와 같은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성전에 가득 찼는데, 대체 일곱 금대접에 담긴 내용이 어떤 것이기에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가득 차서 아무도 성전에 들어갈 자 없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이 말씀에서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을 때 그 신앙이 가져다 줄 그 은혜와 복이 얼마나 큰지 발견합니다. 십자가 사랑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임재로서 충만하게 되는 은총입니다. 8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성경에서 연기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상징입니다. 여호와께서 구름으로 자기 영광을 나타내시던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출16:10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 자기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또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출24:17-18에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했습니다. 또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언약궤를 성전에 봉헌할 때 역시 그랬습니다. 왕상8:10-11에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얼마나 영광으로 충만했으면 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을까요? 이처럼 십자가 사랑 안에서 우리가 은혜를 받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희생적인 사랑을 소유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우리 안에서 나타내십니다. 그 전에도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은 주님의 임재체험에 굴곡이 많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주님을 모셨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안 계신 것처럼 허전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한 임재의 경험은 그의 신부들을 떠나지 않고 온전히 함께 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요14:18-21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특히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나타내주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 임재의 체험만큼 영광스럽고 행복한 경험은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평안과 기쁨은 물론 몸도 구름 위에 붕붕 떠서 다니는 것처럼 컨디션이 좋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고 위로해주시고 은혜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영혼에 강물과 같이 흐릅니다. 그래서 요4:14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셨고, 사35:10에는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했습니다. 습3:16-17에서는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래서 이 사랑을 체험하면 영원토록 그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두 이런 체험을 한 번이라도 해야 합니다. 부흥의 현장에서 그런 체험을 잠시라도 했던 사람들이 그 체험을 잊지 못하고 평생을 찾아다니는데 그 영적 회복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만큼 완전한 것이라 한 것입니다. 바울도 엡3:18-19에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했습니다. 이것이 대접재앙을 통해서 가져다 줄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에 압도 당하는 삶이 됩니다. 다시 8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이 현상은 앞에서 말했듯이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봉헌할 때 현상으로 이 그름 같은 연기현상은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성을 나타냅니다(왕상8:10-11). 이처럼 십자가 사랑은 우리 마음의 죄악에게는 최악의 재앙입니다. 마음의 죄악으로서는 더 이상 큰 재앙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죄악이 받는 재앙이니까 좋은 재앙입니다. 우리 속의 병이 녹아서 사라진다면 축복이듯 우리 속의 악이 사라지는 재앙이 임합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의 최고의 복은 바로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악이 처벌 받는 이 재앙은 강력한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재앙은 다른 재앙과는 달리 신속히 일곱 대접이 부어집니다. 그런데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 아무도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아주 압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디가 이 성령을 받고 너무 감격한 나머지 이 기쁨의 폭포를 멈춰달라고 기도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사라지고 그리스도만 나타나는 이 영광처럼 존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이렇게 일곱 대접재앙이 시행되기 전에 미리 그 결과를 알려주어 우리 모두가 그 은혜 안에 거하기를 갈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곱 대접 재앙의 서론이 보여준 대로 이 아름다운 은혜를 갈망하십시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좁고 험해도 이 길이 생명길입니다. 나를 위해 살고자 하면 죽고, 주님을 위해 죽고자 하면 살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온전히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도 십자가 사랑 안에서 성장하여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숙원이 다 이루어지고 가장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