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대접재앙 서론 4 (계 15:3)

nam씨 2024. 8. 22. 15:51

대접재앙 서론 4 (계 15:3)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이 시간은 “대접재앙 서론” 네 번째 시간으로 ‘십자가 사랑’에 대해서 계속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영국의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의 선교책임자로 있을 때 그는 가끔 선교사 후보생들을 면접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 때 대부분의 선교후보생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은 “수많은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구하기 위하여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합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허드슨 테일러는 말하기를 "그 말이 틀리지는 않지만 그 동기만 가지고는 시험과 시련 그리고 죽음의 순간을 당할 때, 그것은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단지 한 가지 동기가 당신을 견디게 해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교사 역시 십자가 사랑 아니고는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존경스러워 보이고 좋아보이는 그 취향으로는 며칠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도 그 십자가 사랑을 진실로 체험한 자들의 노래입니다.



계속하여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또 어떤 일이 있나요?

8.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만 제일로 섬기게 됩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여기서 그들은 하나님을 “주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주 하나님”이라고 습관적으로 부르지만 그 의미는 대단히 깊습니다. 여기서 “주”는 헬라어로 “큐리오스”라고 하며 “주인”이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주권 즉 나를 향한 소유권을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란 유일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섬길 오직 한 분이신 자를 말합니다. 이 사실이 시내산 언약인 십계명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출20:2-4에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께 정말 은혜를 받으면 세상의 부귀와 사치와 명예와 일락 등은 우리의 관심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관심에서 떠나야 진정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며, 여호와는 우리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녀라 칭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고후6:14-18).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은혜가 십자가 사랑에 있습니다.


9. 십자가 사랑에서 말씀대로 살게 되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 다음에 “곧 전능하신 이시여.”라고 찬양합니다. 여기 '전능하신 하나님'은 엘샤다이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자녀를 갖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왜 구원과 정결의 유리 바닷가에서 하나님을 노래하되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있었을까요?


계1:8에도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했는데,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자가 되었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칼빈의 5개 조항에도 나타나 있듯이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행하기에는 전적으로 무능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죄에 문제에 있어서 무수히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이건 단순한 감화설이 아닙니다. 진정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말씀대로 살아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즉 사랑하는 자에게 우리의 의되신 예수님이 우리 인격에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10.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여기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이 말씀의 배경은 출 15장입니다. 애굽에서 구원을 받고 홍해 건너편에서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15:11) 찬양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구원이었습니다.


이처럼 히2:3에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을 큰 구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 사역 죽음 부활 승천 성령 재림 모두다 크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왜 그렇게 위대하고 크고 놀라운 일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 예수님의 은혜가 바로 우리에게 미쳐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예수와 함께 영광 중에서 승리와 복락을 누립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영광과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사랑을 향해 더욱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사람으로 온전히 자라갈 때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예비하신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다 누리게 될 것입니다(벧후1:4-7).


11.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전적으로 순복합니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여기서 그들은 하나님을 “만국의 왕”이라고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만국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우리 성도의 마음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국이 와서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우리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힘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반대 용례로 바벨론에 의해 만국이 무너졌다는 말씀도 있는데(계18:3) 거기서는 세상에 지배를 받는 마음 즉 인격 전체를 가리킵니다. 당시 바벨론의 지배를 받는 모든 나라를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수많은 나라들이 바벨론의 속국이 되지 않기 위해 저항하다 무너져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성도 각인이 ‘나라와 제사장’이라는 점에서 마음의 경영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만국의 왕이란 이제는 내가 나의 왕 되지 않고 세상이 나의 왕 되지 않고 하나님이 나의 지배자가 되시고 나의 주장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이토록 예수님의 고난의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내 뜻대로 살지 않고 우리를 온전히 마음 바쳐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게 됩니다.

12. 십자가 사랑에서 은혜를 받으면 주의 뒤를 따라갑니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여기 주의 길은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메시아로서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이 이 길을 가시도록 예비하는 자였습니다(사40:3). 그런데 바로 이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다고 찬양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주님이 가신 그 길이 그렇다는 것과 아울러 그 길을 따라갔더니 정말 그렇더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을 따라가는 그 길은 험한 것 같아도 의의 길이요, 영생 길이요, 영광의 길입니다. 주를 위해서 핍박을 당하고 죽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의롭고 참된 길은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길만이 영생의 길, 생명의 길이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즉 의로운 길이기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또 참되기에 그 길을 따라갈 때 성령이 온전히 함께 하셔서 더불어 역사하시는(요3:33) 것입니다.


그래서 마5:11-12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리고 딤후2:11-12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은혜는 그 길을 가보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체험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고난의 사랑에서 은혜를 받게 되면 주를 위해서 핍박 당함을 기쁨으로 알고 죽는 것도 영광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랬기에 베드로가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우리 주님의 고난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마음에 서원으로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남은 여생을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을 위해 온전히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