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천국 알곡론 5 (계 14:19-20)

nam씨 2024. 7. 26. 20:34
천국 알곡론 5 (계 14:19-20)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이 시간은 “천국 알곡론”이라는 제목으로 ‘영적추수와 연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에미 카미켈(Amy Carmichael)의 저서 가운데 나오는 말입니다. 에미 카미켈이 인도의 대장장이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금을 연단할 때 이것이 순금이 되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러자 대장장이는 “예 그건 금 속에서 제 얼굴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연단합니다.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방법은 그 속에 비치는 내 얼굴이 얼마나 정확하게 잘 보이느냐를 가지고 결정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의 옛사람은 사라지고 그리스도 예수의 참 사람의 형상이 우리에게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너무나 완악해서 고난을 통한 연단 없이는 순순히 복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는 참된 알곡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받는 연단이 헛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19절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여기 하나님의 진노가 나옵니다. 이 진노는 죄에 대한 진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는 하시지만 용납은 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면 강한 채찍으로 치시며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롬1:18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그랬고, 골3:5~6에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시7:11-13에도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이상에서 볼 때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진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도 붙잡고 있는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용납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고 어서 속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19절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여기 큰 포도주 틀은 무엇일까요? 포도주틀은 포도를 넣고 발로 짓밟아서 포도즙을 내는 틀인데 작은 틀이 아니고 큰 틀입니다. 크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연관이 되어 있는 낱말입니다. 즉 예수 믿고 변화되라고 밟는 것이지 달리 밟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연단 받을 때 큰 틀에서 보라는 것입니다. 코앞에 나타난 현실만 보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연단하신다는 큰 틀에서 봐야 진리가 보입니다. 그래서 욥19:21에서 욥은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참된 알곡 만드시려고 큰 틀에 넣으셔서 짓밟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욥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했고, 슥13:9에도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현실만 보고 어리석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참 복을 주시려고 나는 낮추시고 연단하심을 깨닫고 더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합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손길에서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여기 포도주 틀, 틀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틀이란 한 번 그 틀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농부의 거친 발에 짓밟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오로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벧전5:6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했습니다. 교만해 봐야 혼난다는 말입니다. 요나가 사명을 회피하기 위해서 도망하지만 뜻대로 되었나요? 처음에는 요나가 탄 배가 순풍으로 항해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요나는 꼼짝할 수 없이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뱃속에서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손길을 피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시139:7-12에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길을 피하려고 말고 단단히 마음먹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4. 내 십자가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20절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여기 성 밖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골고다 언덕을 연상시키는 대목입니다. 골고다 언덕은 우리 죄를 처리하시기 위해 대속의 주께서 고난 받으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혔다는 것은 우리를 연단하시는 목적이 우리 죄를 회개케 하시기 위한 것이란 말입니다.


죄에는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성 밖 골고다 언덕은 죽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으라고 짓밟으시지 살라고 밟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살기 때문입니다. 여기 죽는다는 말은 나를 꺾고 순복한다는 말입니다.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복하고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5. 우리가 죽되 내 생각 내 주장대로 사는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20절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문자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포도주 틀에서 피가 났다는 말도 그렇거니와, 얼마나 났으면 그 피가 말굴레까지 닿습니까? 말굴레라고 하면 사람의 얼굴 높이 정도 됩니다.


그것도 1,600 스타디온 즉 300km나 퍼져나갔습니다.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면 비약도 보통 비약이 아닙니다. 온 세상의 피를 다 모아도 이 정도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씀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포도주틀 밟듯이 짓밟으시는 목적이 나타납니다. 즉 피를 흘렀으니 죽음을 상징하고, 말굴레와 같이 연단이란 바로 우리의 자아를 제어하는 장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32:9에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했고, 약3:3에도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바로 않고 내 고집대로 하면 가만 두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6. 하나님은 우리가 철저히 훈련받기를 원하십니다.


20절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이번에는 1,600 스타디온의 의미입니다. 1,600은 히브리적 사고로 보면 그냥 생겨진 수가 아닙니다. 1,600은 연단의 수 40을 제곱한 (40×40) 수로서 연단되고 연단되는 철저한 연단을 말합니다.


신앙훈련 어설프게 받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 믿고 주일성수는 물론 새벽기도회 참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전도하고 낮아지고 봉사하며 제대로 예수 믿고 오순절 성령충만까지도 관심 갖는 십자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런 믿음 가운데 자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신앙훈련을 받았습니다. 40년 동안 애굽의 1세 국민은 모두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빼고는 모두 2세국민만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잠깐, 갈렙의 이름의 뜻이 뭡니까? "개"입니다. 개는 주인을 사랑하고 주인을 반기고 주인을 믿으며 훈련 시키면 절대 복종하고 충성하고 배신하지 않고 변함이 없습니다.

 
개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배울 점이 많아요. 연단의 결정판이 바로 개라는 의미를 가진 갈렙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40도 가혹한데 40×40이니 얼마나 가혹합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온전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신8:2-6에서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진리의 말씀으로 순순히, 섭리적인 연단으로 강력히 우리가 회개하고 바른 믿음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는 한 결코 우리를 향한 자기 목적을 중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연단의 섭리 앞에서 철저히 순복하여 회개함으로 참 믿음 가진 알곡백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