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알곡론 3 (계 14:17-20)
천국 알곡론 3 (계 14:17-20)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이 시간은 “천국 알곡론”이라는 제목으로 역시 ‘영적추수와 연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곡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마3:11-12에 하신 말씀대로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천국의 열매 맺지 못한 인생 쭉정이 갈 곳은 꺼지지 않는 불 외엔 없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여름에 하는 모맥 즉 보리와 밀의 추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는 포도를 추수하는 가을 추수가 나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두 종류의 추수를 그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를 알곡 만드시기 위해서 두 방향에서 추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두 방향에서의 성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한 편은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다른 한 편은 연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럼 연단을 통한 성화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1. 연단 역시 말씀을 근거로 이루어집니다.
17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4절과 흡사한 구절입니다. 공통점은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예리한 낫을 가진 자가 여기서는 인자 예수가 아니라 천사라는 점, 그리고 낫을 가진 장소는 흰구름 위가 아니라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런데 포도 추수에 낫이 별로 필요 없는데 예리한 낫을 가졌다는 것은 이 역시 천국의 알곡과 한 맥락이라는 것이고, 연단 역시 구원을 향한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연단이란 알고보면 행동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연단을 받을 때 하나님의 의도를 충분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이 아무리 자상하고 분명해도 이것을 왜 이런 연단을 주셨는지 말씀 안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이것은 열매 없는 고통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래서 아이를 채벌하면서도 왜 매를 맞아야 하는지 알게 하지 않는다면 채벌이 아니라 아무 교육적인 효과가 없는 폭행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학에서 체벌의 10대 원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체벌 받는지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시험에 대해서 말한 후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1:5-6)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 때 우리는 진실로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의도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삿 4장을 보면 하솔왕 야빈이 쳐들어왔을 때 바락 장군이 여사사 드보라와 함께 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여기 바락은 ‘벼락’이란 뜻으로 징계의 상징이요, 드보라는 ‘꿀벌’이라는 뜻의 말씀의 상징입니다. 아무리 벼락 쳐도 깨닫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둘이 함께 가서 야빈을 대적한 결과 대승을 이루었습니다.
이 사사기 말씀은 연단과 말씀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폭의 좋은 그림입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받을 때 지혜를 구해서 그 연단의 의미를 진실로 깨달아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욱 회개하고 순종하여 바른 믿음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2. 연단은 거룩한 제사장을 목표로 이루어집니다.
17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이 구절에서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모맥 추수와는 달리 천사가 하늘 성전에서 나와 추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8절은 제단에서 나오는데 여기서는 성전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나오는지에도 그 의미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말씀한 대로 성전에서 나왔다는 것은 성전의 신령한 의미와 성전생활에 대해서 강조한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연단을 허용하신 것은 연단을 통해 회개하여 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더 거룩하며 더 진리에 말씀에 서고 성전에서 생활과 같이 신령한 제사장이 되어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훈련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12:9-13에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연단을 통해서 제사장과 같이 더 겸손해지고 순종하고 깨드려지고 온유하고 충성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벧전2:5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말하면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9절) 교훈하고 있습니다.
3. 연단은 하나님께 순복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17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여기 천사가 나오는데 천사에 담긴 의미가 그렇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라. 그래서 히1:7에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천사가 나타나면 하나님이 나타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천사가 낫을 가졌습니다. 이 낫을 가진 천사 앞에 끝까지 남아 있을 포도는 없을 것입니다. 마치 콤바인이 지나가면 모든 곡식들이 베어지듯이 누구도 천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해서 천사를 이겼다지만 실제는 이긴 것이 아니고 천사를 붙잡고 축복하기 전에는 놓지 않겠다고 놔주지만 않았던 것이 그 전부였습니다.
도리어 야곱은 온 밤을 천사와 씨름하다 기진맥진하여 도망할 힘조차 없었고 천사에게 맞아 환도뼈가 위골되어 걸을 수조차 없었기에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난 살 수 없다고 축복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이길 수 없고 그의 사자인 천사를 이길 수 없어요. 하나님을 이긴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더 큰 연단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져야 합니다. 순복해야 합니다. 나를 꺾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연단의 손길 앞에 더욱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약4:10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했고, 벧전5:6에도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포도 추수는 철저히 나를 짓밟으셔서 깨어지고 부스러지는 나의 옛사람의 자아를 처리하시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순종하고 부스러져야 합니다.
그 동안 나를 위한 예수였다면 이제는 주를 위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죽어야 예수 내 안에서 사시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나를 잊을수록 좋습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입니다. 어린이는 내가 없어요. 나를 망각하고 살아요. 그래서 어릴 때는 무시해도 우리 어른들 감정과 같지 않습니다. 내가 없기 때문에 걱정도 없고 슬픔도 없고 항상 가벼운 마음으로 삽니다. 즉 나를 죽인다는 것은 자기를 목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관적으로 살았던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과 믿음과 순종과 충성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연단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무능하고 또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10:27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 하셨고, 잠21:15에도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여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왕이 되어 자행자지하려 한다 해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무릎을 하나님 앞에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단에 반드시 은혜 속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앞드리는 것이 연단 받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도 연단을 물리쳐달라고 하는 기도보다 이 연단 속에서 내가 더 깨닫고 참 신앙을 각성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우리를 참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연단의 손길을 거두지 않고 계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고난을 통해서 순종함을 배우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연단을 통해서 깊이 깊이 체득시키며 교육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의 삶을 믿음을 위한 훈련 상황으로 이해하시고 더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 나아가고 더 회개하여 더욱 기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