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알곡론 2 (계 14:15-16)
천국 알곡론 2 (계 14:15-16)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이 시간은 “천국 알곡론”이라는 제목으로 ‘영적추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3:11-12에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하신 이 말씀은 종말에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14절을 했습니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여기 흰 구름 위에 예수 한 분만 계신 것은 변화산에서 그랬듯 다른 모든 것은 흰 구름에 덮이고 오직 예수 한 분만 나의 구주로 믿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예리한 확실한 말씀에 서야 만이 진정한 알곡으로 익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리한 말씀 외에도 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부터 나와 예수님께 땅의 곡식을 거둬달라고 외칩니다. 이것은 알곡 추수의 또 다른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인데 즉 앞에서 말한 예리한 말씀 말고 또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은혜입니다. 즉 아무리 오직 예수 신앙의 좋은 말씀이 준비되어 있어도 바로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천사가 성전에서 나오는데 이 나온다는 표현에 담긴 그 의미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성전에서 뭔가 추수와 관련된 귀한 것이 나와야 합니다. 즉 이것은 성전은 하나님이 계셔서 성령의 생수가 성전에서부터 흘러넘치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겔47:1-2에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에 보니 성령의 생수가 성전에서 흘러오고 있었습니다. 이 물은 신기하게 흐르면 흐를수록 많아지고 깊어지는데 동쪽으로 천척을 나아간 후에 재보니 물이 발목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나아간 후에 재보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나아가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나아가니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강가에는 온갖 아름다운 나무가 많아 각종 먹을 새 열매가 달마다 열리고 그 잎사귀는 귀한 약재료가 되는데 그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죽음의 바다가 소생함을 받고 수많은 번성하는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오더라. 성전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성령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다, 그리고 성전의 역할처럼 우리가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할 때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흐르는 강 좌우에 열매가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혜가 임해야 온갖 아름다운 12가지 새 열매가 달마다 날마다 주렁주렁 열립니다. 성령 받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오순절 성령을 받고서야 비로소 참 알곡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성령 이 두 조건이 잘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보면 약 두 종류의 유형이 있습니다. 한 유형은 제자들과 같이 말씀이 먼저 무장되고 성령이 다음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행 10장의 백부장 고넬료처럼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지만 복음을 몰라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가 꿈에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사도 베드로를 초청하여 예수 복음을 전해 듣고 완전한 천국의 알곡이 되는 그런 유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리한 오직 예수 말씀과 아울러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전자가 잘 준비되어 있다면 이제 늘 경외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셔서 천국의 알곡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사가 성전에서 나오듯 성전에서 은혜가 나오는 아름다운 성전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아울러 성전생활이 잘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성전생활을 해야 할까요?
1.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합2:20에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성도들은 늘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와 예배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얼마나 갈망했는지 시42:1-3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시편 84편을 보면 고라자손들도 얼마나 하나님을 갈망합니까? 시84:1-4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이렇게 평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갈망하시란 말입니다. 늘 예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약 용어로 표현하면 성전생활입니다. 그래서 행1:13-14에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했고, 눅24:54에는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이슬람을 진리적으로는 이미 이겼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는 그들에게 지고 있습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죽어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무슬림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메카를 향하여 엎드려서 하루 다섯 번을 기도합니다. 이러한 때에 입다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삿 11장을 보면 암몬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을 때 입다가 전쟁에 출전하면서 여호와께 서원했습니다.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30-31절)
그랬는데 암몬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불행하게도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딸이 그를 맞으러 나옵니다. 그럼 입다가 왜 그런 서원을 여호와께 드렸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입다의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전쟁은 신과 신의 전쟁이었고, 암몬 사람들이 자기 신에게 자식을 태워서 드릴 만큼 신에 대한 충성이 강했는데 그들을 이기려면 참 신이신 여호와께 그보다 더 강한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입다처럼 무모해서는 안 되지만 그런 열심은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거짓 신보다 더 섬기지 못해서야 되겠느냐는 그런 선한 질투가 필요합니다. 불교에서는 새벽 4시나 5시에 새벽예불을 하는데 어찌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한 참신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새벽기도 없이 하루를 살아야 하겠나 하는 질투가 있어야 합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다섯 번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습관처럼 하루 3번씩만 기도해도 몇 년 가지 않아 전 세계는 복음화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알곡 신앙은 교회생활을 철저히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마저 제대로 못하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참 알곡이 되겠습니까? 늘 교회 있든지 집에 있든지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2. 성전을 통한 복음진리를 확실히 이해하고 믿어야 합니다.
천사가 성전에서 나오는데 성전에서 나온 천사가 어찌 성전에 대한 영적 진리를 모를 수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구약의 성전은 곧 예수님에 대한 예표이요, 십자가 복음진리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은 죄인이 예수 복음의 진리로 참 구원의 사람이 되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귀한 진리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은 구원의 진리로 가득합니다. 먼저 성전의 담도 성전인데 여기 들어오려면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제사장 뜰의 번제단이 있는데 이것은 내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용서 받았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고통에서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 성전 앞 놋바다에서 내 생각과 마음의 죄를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즉 성경을 보아 우리 잘못된 생각을 다 교정하고 씻어낼 수 있어요. 그런 다음 성소 안에 들어가면 떡상과 일곱 등불의 등대와 분향단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제사장처럼 말씀과 성령과 기도와 찬송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서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갈라지듯 온전히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보좌 앞에서 흐르는 한없는 생명강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참 알곡으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피의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 공로 없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추수의 일군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5-16절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여기 천사가 추수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추수의 일군이란 복음을 가진 신약의 일군입니다. 이 일군은 성령의 일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군이 없으면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기도의 일군은 있지만 말씀이 없으면 말씀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은 있으나 능력이 부족하면 은혜를 위해서 기도하고 부족한 것을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마9:36-38에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셨습니다.
이런 기도 없이 미국 하버드대 나온 사람만 구하려고 하니 되나요? 그랬다가 모두 실망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땅의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천사가 되어 복음의 진리로서 구원의 백성들을 많이 하나님 앞으로 이끌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기도로 도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 이 오직 예수의 예리한 말씀에 설 뿐 아니라 성전에서 흘러넘치는 은혜의 생수와 성전에 담긴 귀한 복음의 진리 그리고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기는 성전의 제사장들처럼 늘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참된 알곡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