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세 천사의 경고 3 (계 14:8)

nam씨 2024. 5. 24. 19:49

세 천사의 경고 3 (계 14:8)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이 시간은 선교헌신예배지만 지난 번에 신선교사님이 강단을 맡아주셨으므로 따로 본문을 잡지 않고 계속해서 말씀을 강해해 나가면서 본문을 선교적 관점에서 터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세 천사의 경고”라는 제목인데 부제로는 ‘세상에 대한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은 이 세상 나라가 멸망 당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바로 선교적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세상 나라는 철저히 멸망 당해야 하고 그들 마음 속에 예수 복음을 심어 알곡에 이르게 양육해야 합니다. 이것이 계시록의 목표요, 선교의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둘째 천사가 첫째 천사의 그 뒤를 따라 날아가면서 외친 말인데 여기서 세상에 대한 정체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즉 계시록에 나타난 바벨론은 세상을 가리키는데 이들의 악이란 필설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을 거역한 거대한 악입니다. 마치 역사 속의 바벨론이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욕보이고 하나님의 도성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잡아갔듯 지금도 세상 바벨론은 쉬지 않는 악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세상의 진정한 정체란 무엇일까요?


1. 예수 안에서 보면 이미 무너진 성입니다.


이게 놀라운 것입니다. 8절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이 말씀처럼 바벨론은 무너진 성입니다. 이 무너졌다는 말씀만 들어도 어떤 느낌이 오지요. 사람들이 무너진 줄 모르고 있는데 무너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느낌, 또 무너질 수 없는 거대한 도성인데 무너졌다는 것 등의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무너졌다는 말의 원문은 문법적으로 부정과거형입니다. 부정과거형이란 과거에 한번 딱 일어나고 끝나버린 것, 즉 행동이 연속되지 않는 단회적 사건, 단순과거형을 부정과거형이라고 합니다.

이 부정과거형을 두 번에 걸쳐서 반복하고 있다는 것, 즉 2는 증거의 수로서 이것이 어떤 진리임을 나타내줍니다. 그런데 2는 보통 복음과 증인이나 증거를 나타내는 수이므로 바벨론 즉 세상이 무너진 것은 이미 성취된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 반복함은 곧 "이건 진리다. 믿으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천사가 첫째 천사의 뒤를 따라 연속적으로 말한 것은, 드라마틱한 표현의 기교가 아니라 이 역시 앞의 나타났던 우리를 구원한 복음과 같이 이것도 복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그토록 사람들을 미혹하고 통치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멸망으로 인도하던 세상은 예수 안에서 무너졌습니다. 구약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이미 우리에게 붙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치면 다 무너지고 말 도성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멸망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사조와 타락의 풍조, 세상의 비기독적인 요소, 이방 종교, 2슬람, 공산주의 등 다 하나님이 우리엑 붙이셨다는 확신 가지세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갔다가 바벨론이 멸망함으로 해방되어 돌아온 것처럼 예수 안에서 우리 성도들은 해방을 누릴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갈6:14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즉 예수 안에서 보면 우리만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라 세상도 우리를 대하여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권세가 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이걸 진리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이건 나도 세상에 대하여 상관이 없고, 세상도 나에 대하여 볼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팎으로 모두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놀라운 복음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나도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세상도 나를 유혹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유혹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으면 세상도 나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틈을 보이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성령 안에서 100% 이깁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세상이 무너졌다는 이 진리에 먼저 서시기 바랍니다.
 
2. 세상은 어마어마한 권세와 영광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큰 성 바벨론”이라 했습니다. 역사 속의 바벨론을 보면 바벨론은 BC 3000년 이전에 정착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였습니다. 바벨론에서 유명한 왕은 함무라비(BC1792-1750)로서 엄격한 법전을 편찬했고, 느브갓네살 1세 (BC 1124-1103)는 바벨론을 수도로 삼았고, 신바벨론은 제국은 BC 625년 시작 느브갓네살 2세 (BC 605-562) 때 최고 전성기를 누려 앗수르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유대인들을 포로로 끌어갔습니다. 이때가 주전 580년이었습니다.


느브갓네살이 거대한 제국과 아울러 거대한 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바벨론성입니다. 성경에 바벨론성을 큰 성이라고 한 것처럼 성의 규모는 아주 컸습니다. 대개 성은 4각형 모양이었는데 성의 한 변의 길이가 120스타디온, 둘레가 480스타디온, 그러니까 미터법으로 고치면 둘레의 길이가 약 90km가 되는 성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둘레가 90km면 적지 않는 도시인데 수천 년 전에 인력이나 동물을 이용하여 그 성을 만들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바벨론성을 향해 유브레데스강이 흐르는데 강물은 바벨론 성에 도착하면서 3갈래로 나뉘어져 한 강은 성안으로 흐르고, 다른 두 갈레는 성벽주위를 돌아서 흐르게 하여 누구도 성벽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거기다 물가에 우뚝 선 성벽의 두께가 50페키스인데 1페키스가 약 60cm이므로 성벽의 두께가 30m입니다. 그리고 성벽의 높이는 200페키스, 즉 약 120m입니다. 이런 성벽이 또 다시 이중으로 되어 있고 성벽 둘레로 유브라데스강이 흘러 아무도 그 성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이 성벽 아래를 판 웅덩이를 해자라고 하는데 그 깊이가 깊어 적이 공격할 수 없었습니다.


성벽의 벽돌은 몰타르 대신에 콜타르를 사용하여 방수성이 강했고, 성벽 위 역시 넓어 가옥을 연이어 마주보게 지었으며, 성벽을 돌아가면서 성문이 100개가 있었습니다. 이 문들은 녹슬지 않고 견고한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문의 바깥쪽에는 다리를 놓아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도개교였습니다.

 
성 안의 집들은 철근 콘크리트가 아니었지만 3-4층의 튼튼한 건물로 밀집되어 있었고, 성안의 길은 도시계획이 잘 되어 바벨론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거기다 느브갓네살이 그의 왕비를 위해 궁전 위에 만든 공중정원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에 속할 만큼 호화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멸망합니까? 바벨론 왕이 하나님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으로 술을 마시면서 하나님을 능멸할 때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보내서 그 성을 함락시킵니다. 그 때 가장 큰 문제가 성을 둘러싼 해자 즉 강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레스는 군사들을 시켜서 유브라데스강 상류를 막고 물줄기를 360갈래로 돌려 물이 줄어들자 술에 취한 바벨론성을 일거에 정복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큰 성 바벨론과 같습니다. 계시록에서 큰 성이란 물리적으만 크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만큼 미혹력이 강력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에 빠뜨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이 지배하지 않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마귀가 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가지고 예수님을 미혹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세상의 지배 하에서 죄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이 예수 안에서 무너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는 세상도 더 이상 힘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도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나 복음과 성령으로 빛을 발하면 세상도 바벨론성이 무너지듯이 무너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경외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물줄기를 끊고 대신 말씀과 성령의 물줄기를 보내야 합니다. 예수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기도해서 이 땅에 뜨거운 성령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강성한 세상도 힘 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대하7:14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우리 마음도 사회도 세상도 다 고쳐주십니다. 지금 죄악이 발달해 가는 것도 우리들이 할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세상은 사람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합니다.


그리고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이 구절만 읽어도 얼마나 지독한 놈인지 아시겠죠? 마치 역사 속의 바벨론이 모든 나라를 진노로서 짓밟은 것처럼 세상 역시 많은 사람들을 죄악으로 미혹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기 “모든 나라”는 넓게는 국가, 좁게는 우리 각인에게도 해당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를 “나라와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세상 통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음행"이란 말이 나오는데 음행이란 육신적인 음행을 포함하여 세상을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신부의 정절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약4:4에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했고


엡5:5-7에서는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바로 사람들에게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진노의 포도주”란 말이 나오는데 포도주가 생산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가 수확이 되면 그 포도를 포도주 틀에 붓고 사람이 올라가서 짓밟습니다. 여기에는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잘 짓밟을수록 좋고 많은 포도주가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 받게 만들더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 받아라. 나와라. 그리고 변화시켜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진리 안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세상의 정체를 분명히 깨닫고 썩어질 세상에 마음 두지 말고 항상 승리의 복음에 굳게 서서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와 세상은 십자가 아래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나를 비롯 땅 끝까지 이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선교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