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세 천사의 경고 2 (계 14:7)

nam씨 2024. 5. 16. 22:54
세 천사의 경고 2 (계 14:7)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이 시간에는 “세 천사의 경고”라는 제목 안에서 부제목으로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이야기를 했는데, 책 속의 주인공 기독도가 황막한 광야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근심하고 떨고 슬피 울면서 죄악의 장망성을 떠나는 장면은 바로 우리 성도들이 말씀 보거나 들으며 가슴 치며 회개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로 죄를 떠나는 이런 일이 있어야 합니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패역한 이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행2:40) 한 외침이 바로 그것입니다. 본문에 공중에 영원한 복음을 들고 날아가는 천사의 “큰 음성”은 자기 백성들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 시내산의 엄위한 나팔소리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큰 음성을 연상하게 합니다. 죄 떠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듯 느껴집니다.
 
레11:45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신 그 말씀과도 같습니다. 계시록은 이처럼 우리에게 거듭 거듭 반복하여 거룩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성별의 복음이요, 그래서 복 중의 복의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 영원한 복음을 가진 천사는 우리에게 죄악된 세상에 물들지 않고 거룩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세속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7절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여기 두려워하라. 이 말씀은 단순한 심판 경고가 아니라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죄에서 떠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후7:1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바로 경건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만 알면 죄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기 때문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듯 말처럼 길길이 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막9:42-48에서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마10:28에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하셨고, 잠16:6에도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르기에 함부로 행하고 그래서 온갖 비극을 당합니다. 그런 간증 많지만 오해할 까봐 그만 둡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다서를 보면 에녹은 심판주 하나님을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1:14-16에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했습니다.


2. 주님이 하신 것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여기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에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이있다는 뉘앙스를 풍겨줍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위대한 일을 무언가 하셨고 또 하실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 방법은 너무나 쉬워 믿고 감사하면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즉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하신 일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고전1:30-31에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히2:10-13에도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고 감사하고 찬양할 것밖에는 더 있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생명을 주셨습니다. 입 버릇처럼 강조하지만 성도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 안에서 이미 이긴 자입니다. 예수 이기심이 바로 성도 이김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때 우리가 승리를 체험했든 안 했든 일단은 변함이 없는 진리인 승리의 복음에 서야 합니다. 스스로 거룩하려고 근심하지 말고, 지금 내가 성공했든 넘어졌든 관계하지 말고 일단은 예수 안의 승리자라는 복음에 견고히 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성도가 할 일은 늘 복음의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3. 또 세상을 이기는 능력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여기 심판하실 시간이 무엇일까요? 이 심판은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재림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심판은 지금도 성령 안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슬픔과 탄식과 죄악이 우리에게서 달아납니다. 시간이나 때는 늘 은혜와 함께 쓰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오는 이치입니다.

 
그래서 고후6:1-2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습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 죄를 이기는 실재를 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롬8:1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늘 성령의 은혜 속에 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영적 싸움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면 승리이지만, 우리에게 사탄의 영이 다가오면 실패입니다. 이 심판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이 심판은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시므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세상은 마치 종이축이 말리는 것처럼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의 예언은 온통 전쟁의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성령강림이 신령한 의미에서 곧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욜 2:30-32에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악을 심판해 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복음의 말씀에 설 뿐 아니라 기도 열심하여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4. 그 때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새롭게 창조해 주십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죄로 인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우리 심령을 하나님께서이 말씀과 성령으로 재창조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엡2:10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아담 안에서 창조 말고도 예수 안에서의 새 창조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과 성령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창1:1-3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진리는 우리 새 마음의 창조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 통회하면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51:10)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창조의 하나님을 말씀하면서 4종류, 즉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강)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셨을까요? 먼저 경배하라는 것은 여기서도 역시 뭔가 큰 감사할 일이라는 뉘앙스를 풍겨줍니다. 그리고 경배할 때 오는 은혜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과 바다와 강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할 때 성령의 은혜로 와지는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악이 떠나가 하늘이 열립니다.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또 우리 마음의 옥토 밭에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습니다. 그리고 바다의 부요가 다가오듯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면 우리 마음에 온갖 은혜와 은사로 가득하게 하시고, 나아가 성령께서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셔서 물처럼 우리 잘못된 생각을 씻어주셔서 생각까지도 아름답게 창조해주십니다.
 
성경을 읽어도 성령께서 역사해 주셔야 변화가 옵니다. 관념이나 사상, 한 번 잘못 들어가면 바꾸기 어렵지요. 그토록 말씀을 듣고도 믿음 없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답답하죠. 그런데 기도하고 성경을 보면 그 사상을 바꿉니다. 성령께서 역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내세관 등 생각을 바꾸고, 언어를 바꾸고, 삶을 바꾸어줍니다.
 
그래서 롬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자 했고, 골3:9-10에 "너희가 -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지식과 무의식 관념까지도 새롭게 되는 성결함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거룩을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와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우리에게 거룩하게 되는 길을 마련하시고 지금 우리를 그 가운데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죄를 떠나기 위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 거룩하게 되고 새롭게 되고 아름답게 되는 복되고 거룩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