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 2 (계 14:2)

nam씨 2024. 4. 20. 15:33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 2 (계 14:2)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이 시간 “찬양하는 십사만 사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144,000에 대한 주장, 그러나 144,000은 어느 특정한 집단이나 문자 그대로 144,000명이 아닌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구원의 총수라는 견해가 학자들에 의해 가장 설득력이 있고 유력한 주장입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144,000은 모든 구원의 총수이지만 여기 14장에 나타난 모습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의 복음과 성령의 감동 속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그 구원의 은총을 풍성히 누리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예배론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모습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144,000은 어떤 사람들일지 오늘은 144,000의 목소리를 가지고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목수리만 들어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2절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이들의 소리는 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즉 이들은 땅에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소리가 하늘에서 났다는 것은 그들이 하늘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 속했다는 것은 꼭 죽어 천국에 올라간 것만을 가리킨 것은 아닙니다. 가령 이 땅에서도 은혜 받으면 천상의 목소리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권세와 은혜로 충만한 말씀을 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3절에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라 했습니다. 땅에 속하지 않는 자라는 것은 육신을 벗고 천국에 갔든지 아니면 이 땅에 사나 이 땅의 죄에 메이지 않고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삶을 살든지 중요한 것은 그들은 예수 안의 승리를 누리고 있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후자가 더 가깝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천상에서는 죄와 싸울 필요도 없고 고통과 싸울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상은 다릅니다. 만유인력보다 더 강하게 세상이 우리를 끌어당기고 또 염려와 근심이 누르는 중압의 환경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이기고 하나님 앞에 예배한다는 사실은 이 땅에서 가장 실감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 오셨으나 땅에 속하지 않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래서 요3:31-32에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3:34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했습니다. 이것은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셨어도 하늘에 속하셨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죽겠다. 살겠다. 무엇을 먹을가? 무엇을 입을까? 염려 근심 절망 다툼 추함 불만 불평 등 땅에 속한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 속여도 목소리는 속일 수 없습니다. 마 26장에 베드로가 계집 종 앞에서 나는 예수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고 부인할 때 그 여종이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73절) 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저 모이면 땅에 속한 이야기밖에는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144,000은 하늘의 소리만 났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배할 때 세상은 사라지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집니다. 하늘의 생각으로 가득찹니다. 하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흘러 넘칩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가 바로 144,000인 것입니다.

6. 예수님을 닮아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자들입니다.


2절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그들의 소리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았습니다. 문자대로라면 미국과 캐나다의 나이아가라폭포나 브라질과 아리헨티나의 이과수폭포 소리와 같이 장엄한 소리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144,000이 찬양하니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꼭 그렇게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 물은 무엇일까요? 엡5:26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여기 물과 말씀은 동의어입니다. 그러니까 물은 말씀을 상징합니다.

혹은 물이 성령을 상징할 때도 있습니다. 요7:37-39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 두 가지를 합하면 말씀과 성령입니다.


그런데 많은 물소리입니다. 물이 많다는 것은 많다는 것은 충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물소리는 곧 은혜와 말씀으로 충만함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요1:16-17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계1:15에도 나오듯 예수님의 목소리는 많은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144,000은 예수님을 닮은 자들입니다. 예수님 닮을 만큼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144,000이 되려면 늘 말씀과 기도와 찬양함으로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144,000의 모습입니다.

7.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거룩한 자들입니다.


2절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큰 우렛소리 같았습니다. 이 모습은 누구의 모습입니까? 계4:5에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났는데 이는 보좌에 계신 엄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두려우신 모습일까요? 하나님은 사랑 많으신 아버지시지만, 현 편으로는 죄에 대하여는 그렇게 두려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 그 엄위하신 모습과 같습니다. 시내산의 율법을 주신 하나님 메시지가 뭘까요? '죄 짓지 말고 하나님 잘 섬기고 복 받고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혼 난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친근하게 섬기면서도 한 편으로는 두렵게 알고 범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12:28-29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그런데 144,000의 큰 우렛소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과도 같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죄에 대한 엄위함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원수인 죄와 사단과 세상과 더 이상 친하지 않고 대항하는 자들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죄를 원수 보듯 하는 사람들입니다. 144,000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 대로 죄를 멀리한 거룩한 자들입니다.


8. 그들은 성령의 은혜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2절 하반 절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상당히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하늘에서 나는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 소리가 요한의 듣기에는 거문고 타는 소리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그 소리에 두렵고 떨렸다 했는데 요한에게는 그 소리가 거문고 타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거문고가 뭘까요? 성경에서 거문고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로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수금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예로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성령이 임하셔서 악신이 물러갔습니다. 또 다른 예로 왕하 3장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자 그들을 치러 아합의 아들 여호람 왕이 유다왕 여호사밧과 함께 원정에 나선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막 한 가운데서 그 많은 군사와 말을 먹일 물이 없어 죽어가게 됩니다. 그 때 믿음 좋은 여호사밧의 제안으로 선지자 엘리사를 청해서 거문고를 타며 찬양하게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영이 엘리사에게 임하셔서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아침 소제 드릴 때  에돔 쪽에서부터 물이 흘러와서 그 물이 개천의 웅덩이를 가득 채웁니다. 그래서 온 군사와 말이 그 물을 마시고 살아나게 됩니다.

이처럼 여기 거문고는 바로 성령의 감동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144,000이 가진 모든 것, 주죽 하늘에 속한 것이며,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것이며, 죄를 미워하고 의에 속한 것이며 모두 성령의 은혜 속에서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신앙생활 잘하여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서 그렇게 사랑 받고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승리자가 되어 기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2절의 144,000의 다양한 찬양 소리는 곧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소리더라는 것입니다. 즉 144,000은 바로 성부 성자를 닮고 성령으로 충만한 하늘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그만큼 장성한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봐도 영적으로 장성했다란 먼저는 죄에서 떠난 것이요(고전3:1), 아버지를 닮아 사랑이 풍성하며(고전13:11-13), 예수님을 닮아 은혜와 진리가 풍성한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거문고 타는 소리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으로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을 뿐 아니라 다시 사시고 사셨을 뿐 아니라 하늘 높이 승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은혜에 이르시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에 굳게 서서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144,000과 같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세상에 사나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하여 온전히 승리적 삶을 살아가는 장성하고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