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 5 (계 13:16-18)

nam씨 2024. 4. 6. 15:46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 5 (계 13:16-18)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이 시간에는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마지막 시간으로 ‘세상의 권세’에 대해서 계속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요15:18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하셨는데 왜 세상이 미워할까요? 세상의 배후에는 사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그런 괴력을 가지고 세상을 미끼로 삼아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자 그럼 세상의 권세는 어느 정도일까요?

14. 육신에 속한 사람으로 만드는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16-17절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여기 보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오른손과 이마에 표를 받게 합니다. 그리고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는데, 여기서 과연 그 표는 무엇이고 매매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계시록 기자 요한은 힌트를 주는데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기지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갈수록 알록달록 궁금증을 더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짐승의 그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수효도 역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적  사고가 아니면 성경을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수께끼 낸 것과 같아요. 삿14:14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그 답이 과연 뭘까요?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수수께끼지만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어려운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히브리 문법에서는 평행법 문장입니다. 평행법 문장이란 같은 의미의 문구를 서로 다른 보완적인 말로 나란히 두 번 이상 반복하여 의미를 보완하고 강조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먹는 자와 강한 자는 같은 말입니다. 잡아 먹으면서 강한 자가 뭘까요? 가장 강한 포식자는 당시 사자 말고는 없습니다. 그리고 먹는 것이면서 달콤한 것이 뭘까요? 그렇다면 꿀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사자의 몸에서 꿀이 나왔다.’가 정답입니다. 이건 블레셋 사고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수수께기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짐승의 이름이나 수란 성경적인 사고로 보면 바로 짐승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것도 세상이 하나님의 이름을 흉내 낸 것입니다. 즉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라.” 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예수나 예수 이름이나 같아요. 그러니까 짐승의 이름이란 곧 짐승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사고입니다. 짐승의 수 역시 설명하겠지만 넌 완벽한 짐승이라는 것입니다.


이 짐승의 이름을 오른손과 이마에 찍어주었다는 것은 “넌 짐승이다.” 하고 인친 것입니다. 여러분, 짐승 되고 싶습니까? 짐승 인증 받으면 됩니다. 타락하면 본능을 따라 살기 때문에 짐승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을 타락시켜 “넌 짐승이다. 꽝” 하고 인친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넌 육에 속한 사람이다.”라고 인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의 성도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나를 닮았다.” 하시면서 인치시듯이 세상도 자기 추종자들에게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나를 닮은 짐승이라. 너는 육에 속한 사람이라. 너는 세상 사람이라.” 이렇게 인증해 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타락한 사람을 가리켜 멸망할 짐승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벧후2:10-14에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이렇게 세상에 속하여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어서 속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이렇게 사람들을 타락시켜 짐승으로 만듭니다.


15. 세상은 사람들을 완전히 자기 사람, 자기의 도구로 만듭니다.


다시 16-17절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그럼 여기 “그 이름의 수” 즉 짐승의 수는 무엇일까요? 자들이 잘 모를까 봐서 18절에 힌트에 힌트를 또 주고 있습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그렇다면 육백육십육이라 했으니 그 짐승의 수가 666마리일까요? 그런데 이 수는 사람의 수이기도 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사람 666명?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알록달록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접근하는 것이 바로 성경해석이 불가한 블레셋 사고이고 인간의 사고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100년 가도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수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령, 1은 시작이나 연합이나 유일성, 3은 완전하신 하나님에게 돌리는 완전수입니다. 2나 3은 증인의 수요, 4는 땅이나 우주, 5는 10진법의 중간으로서 고통이나 고난, 그래서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손과 발 옆구리 다섯 군데가 못이나 창에 찔렸습니다.

그런데 6은 세상이나 육신 짐승 등을 가리키는 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6일 만에 창조하시고, 창1:24부터 보면 짐승도 사람도 모두 6일째에 만드셨기 때문에 그래서 6은 짐승이나 사람 혹은 세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666을 짐승의 수나 사람의 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짐승과 사람의 공통점은 육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666은 6이 3번 거듭된 수으로서 거기에는 또 새로운 의미가 부가됩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완전수를 모방하는 행위입니다. 6은 원래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일곱째 날 모든 일을 마치시고 쉬셨기 때문에 7이 완전수인데 6은 1이 부족해서 완전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을 3번 써서 하나님의 완전을 모방하려고 한 수가 바로 666입니다. 모방은 모방인데 이런 모방입니다. 그냥 6이 육체라면 666은 육적인 을 말합니다. 즉 “넌 완전한 세상 사람, 넌 완전한 육신적인 사람, 그리고 넌 완전히 짐승의 사람, 사탄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의 이름이나 짐승의 수는 같으면서도 서로 보완적인 성질을 갖고 있는 말로서 결국 같은 말입니다.

 
짐승의 수나 사람의 수도 그렇습니다. 이 역시 평행법 문장으로 짐승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짐승 같은 사람입니다. 누가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가? 이것이 세상 권세입니다. 인간을 완전히 타락시키는 악의 권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먹음직 지혜롭게 할 만큼 보암직하게 미혹하던 사탄이 지금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으로 사람들을 타락시켜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나 닮은 완전꼴이야. 내가 그걸 인증해 줄께” 하면서 그 증표로 오른손과 이마에 인을 치면서 타락시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666이 뭔지 조금 감이 잡히십니까? 사람들이 666을 바코드 베리칩이라 해서 이걸 받지 않으면 상품조차 살 수 없어 살아갈 수 없다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바코드(barcode)가 뭡니까? 바코드는 컴퓨터가 판독할 수 있도록 고안된 굵기가 다른 흑백 막대나 점으로 상품의 포장지에 인쇄되어 빛을 비취면 뛰 소리가 나면서 컴퓨터가 가격을 읽고 계산하기 쉽게 된 코드입니다. 우리가 마트에 가면 돈 계산할 때마다 사용하는 것이 바코드입니다.


만약 666이 바코드라면 2,000년 전에도 계시록은 열린 복음이었는데 그 때 사람들이 지금의 바코드를 몰랐기에 계시록은 그동안 열린 복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계시록이 열린 복음이지 2,000년 후에 바코드시대가 와야 해석될 수 있는 인봉된 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지 오늘의 문화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는 것은 혹시 미래의 정부가 바코드를 악용하여 인간을 통제하거나 억압하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이것이 비록 멸망에 떨어뜨리는 영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거부이지 바코드가 666이어서 거부한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럼 왜 666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 합니까? 그런데 무엇을 매매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매매란 저 뒤에 나오는 바벨론 상품을 말합니다. 바벨론 상품이란 죄인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쾌락과 거짓된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성도라면 이런 것들을 사거나 만들어 팔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 같은 인간들을 죄에 담대하기 때문에 그 매매가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유명한 스타 가운데 두 사람이 함께 동업하다 한 사람은 하나님도 모르고 무당 아들이기 때문에 세속적이고 사탄적인 록음악으로 세상을 타락시켜 한류스타가 되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목사의 아들로서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고상한 노래만 부르다 세계적인 가수는 되지 못했지만 기부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한 가수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은 세상을 사고 팔러 다니는 사람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짐승의 표가 없기 때문에 세상 팔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더 좋은 것입니까? 짐승의 표, 짐승 아닌 사람이 더 좋은 거지요. 그러므로 짐승의 표 받지 않는다란 바코드 거절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세속을 피한 것을 가리킵니다.

16. 세상은 우리 인격과 행위까지 전인적으로 타락시킵니다.


다시 16절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여기 “모든 자” 그래놓고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자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한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가 유대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를 지배했는데 그 안에는 로마인이라는 자유인이 있었고, 잡혀온 노예들도 많았고, 작은 자, 큰 자, 부자, 가난한 사람 등 여러 종류의 계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잡혀온 노예들에게만 인두에 불을 달아서 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에서는 그들만이 아니라 자유인을 비롯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록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기 위한 메시지인데요. 그러니까 그것은 바로 전인적인 타락을 말해줍니다. 온 나라가 다 표 받은 것처럼 우리의 몸도 마음도, 영혼도 육체도, 생각도 행위도, 이론도 말도 행위도 다 함께 타락한 것을 말한 것입니다. 부분적 타락이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또 다시 입증하는 문구가 바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라는 말입니다. 오른손은 행위의 대표입니다. 그리고 이마는 인격의 대표입니다. 즉 그 인격과 행위가 타락했다면 다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성도라도 온갖 탐욕과 이론과 환경과 강압적인 방법 등으로 미혹시켜 우리를 세상사람 만들고, 육신적인 사람 만들고, 사탄의 완전한 사람 만들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정신 차려서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한 번 주일 빠져 되겠지, 주일날만 교회 나오면 되겠지, 명목상 신자 정도로 편하게 예수 믿자.’ 그렇게 살다가는 사탄이 먼저 알고 세상과 함께 찾아와서 잡아갑니다. 어떤 사건을 발단시키거나 무슨 건덕지를 만들어서라도 하나님과 교회에 등지게 만들어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세상 사람 만들어놓는다는 진리가 바로 짐승의 표 666의 비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이런 흉악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분별하여 확실하게 따라가지 않으면 그 영혼은 죽은 영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넓은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등지고 십자가 지고 좁은 길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외치던 베드로의 그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회개하여 명칭만 신자가 아니라 참 마음으로 세상에서 출애굽한 의와 진리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