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 4 (계 13:15)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 4 (계 13:15)
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4번째 시간으로 ‘세상의 미혹’에 대해서 계속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맹위를 떨치는 것은 그 배후에 사탄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엡6:12-13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했습니다.
그럼 세상의 미혹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요?
11. 세상은 악의 사람을 만들어냅니다.
15절 상 반절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여기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하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잡히면 세상 사람이 안 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권세가 있습니다. 세상, 우습게 봐서는 안 됩니다. 내노라 하는 사람들도 세상에 걸려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대남공작부에서도 그런 수법을 쓴다고 합니다. 북한을 방문하는 남측 인사들을 돈이나 미인계로 미혹해서 그걸 약점 삼아 코에 고리를 꿰어 남한을 적화시키는 일군으로 죽을 때까지 써먹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도 세상 앞에 꼼짝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방력을 보세요. 세상의 모방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세상도 창조주 하나님을 모방합니다. 창2:7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한 것처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진리의 사람이 아니라 악과 비진리의 자기 사람을 만듭니다. 이 모방력 만큼은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짝퉁천국 중국인들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드신 후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은 것처럼 마음에 악을 불어 넣어 죄의 생명과 사상을 불어넣어 죄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할 정도입니다.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했다는 것은 말은 인격의 표현이요, 또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는 점에서 세상적인 것으로 충만한 인격을 암시합니다. 완전히 세속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마12:34에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하셨고, 눅6:45에도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이건 사탄의 작품이요, 세상의 작품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세상을 불어넣어 인간을 죄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12. 세상은 선한 생각이 깃들지 못하게 철저히 배격합니다.
15절 하 반절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여기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 하는 자”는 말은 저항세력을 암시하는 말인데 예를 들면 다니엘이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 세 친구가 절하지 않다가 풀무불에까지 던져졌습니다.
우리 속에도 세상을 저항하는 저항세력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 꺼리는 체면과 도덕적인 생각도 저항세력입니다. 그러나 그건 그리 강한 것이 되지 못하고, 더 강한 세력 세상의 사법입니다. 법의 처벌이 두려워서 범죄하지 못합니다. 살인해도 몇 년 살고 나오면 끝이라면 사회가 얼마나 혼란하겠습니까? 지금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법도 기준이 타락하거나 마음의 죄까지는 관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 강한 것은 신앙양심입니다. 신앙양심이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 법에 용감하고 신앙양심에는 둔감한 사람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 멀리하면 자동으로 이 저항세력들이 점점 약화됩니다. 영적인 면역결핍증에 걸립니다. 양심이 화인을 맞은 듯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세상을 더 즐기게 되고, 더 나중에는 뿌리 깊은 쓴뿌리가 나서 신앙과 선한 것에 대해 악감을 가지고 이를 갈면서 완전히 악마로 변해버립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마음의 파수꾼이 든든해야 합니다. 무드셀라(창 던지는 자 = 파수꾼)에 담긴 의미처럼 파수꾼이 죽으면 심판이 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지킬 것은 자기의 마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12:15에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라”고 경고합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그랬습니다. 이에 대해 독일의 쿠르트 교수가 ‘유대인과 아돌프 히틀러’라는 그의 논문에서 히틀러가 유대인을 600만 명 학살하게 된 는 유대인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예를 들면 과부된 자기 어머니와 유대인의 애정관계라든지, 또 자기 꿈인 미술학교에 진학하려 했지만 불합격시킨 유대인 면접관에 대한 원한, 그리고 그가 비엔나에서 공부할 때 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 여자가 변심한 후에 보니 그 여자가 유대인이었다는 점 등 그는 불행하게도 유대인과 얽힌 원한관계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사탄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유대인을 멸하기 위해서 장차 총통이 될 히틀러라는 한 사람에게 철저한 악을 쌓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그가 쓴 ‘나의 투쟁’에 나오는 말인데 유대인에 대한 시기 또한 컸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에 대해 고조되어 있었는데 유대인들이 얄미울 만큼 뛰어나서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유대인들을 박해하게 된 표면적 동기였습니다. 그러나 보다 깊은 내면적인 동기는 히틀러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기도가 없으니 사탄의 시험에 의해 끊임없이 그의 마음에 악감이 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탄이 인간을 완전한 세속주의자나 역사 속에 쓰일 악독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그들의 고도로 전문화된 수법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여러 동기를 규합시켜 선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증오하게 만들어갑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심히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정신 차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거나 배후의 기도자가 없으면 인간은 사탄과 세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 인격이 굳어져서 돌이키려야 돌이킬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쓴 뿌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괴롭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13. 세상은 선을 몰아낼 뿐 아니라 깃들지 못하게 죽입니다.
15절 하 반절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여기 “몇이든지”라는 말은 저항세력이 많다는 것을 암시함과 동시에 그 저항세력을 철저히 배격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꼭 이슬람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문제인 것은 포교의 수단으로 폭력이 교리적으로 허용되거나 장려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꾸란9:111에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을 죽이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상으로 받는다." 했고, 꾸란2:217, 꾸란4:89에는 "이슬람교를 떠나는 사람은 죽여라." 꾸란8:12, 47:4에서는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들은 목을 베어 죽여라." 꾸란9:5에서는 "알라신을 위해서 죽이고 순교하라." 꾸란8:12, 꾸란8:60에서는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들을 위협하라." 그리고 꾸란 제 8장에서는 "이슬람교가 아닌 사람들의 것을 훔쳐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슬람 집단에서 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죠. 자신들은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두 번째 나타난 지하드 사상에 묻혀 무효가 되었고, 지금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집단폭력의 대다수는 이슬람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그렇듯 같은 이슬람이어도 종파만 달라도 전쟁을 불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슬람인구가 많이 들어와 있지만 소수일 때는 아주 순한 양처럼 숨어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 이슬람 교인들이 저지르는 테러 때문에 보복이 두려워 그들은 숨을 죽이며 몸조심하고 있지만 세력이 커지면 국가까지도 전복시켜 이슬람 국가로 만들고 맙니다.
세상에는 온건 이슬람이란 없습니다. 즉 그들이 온건하다면 그들의 교리에 미온적이거나 타의 저항을 두려워서 미적거리는 것이지, 이슬람에 열심하게 되면 반드시 그들 교리에 따라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름 즉 지하드로 나오게 됩니다. 지금 다문화 소수인권 등을 들고 나오면서 침투해 오고 있고, 오일달러나 무역에 탐내고 함부로 열어줬다가는 프랑스나 벨기에 꼴을 당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보면 세상이 그러합니다. 세상은 선한 생각이 깃들지 못하게 철저히 마음을 미혹시킵니다. 그래서 세상에 심취하게 되면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상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돈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죽이고, 외도가 무엇이기에 조강지처를 죽이고, 탐욕이 무엇이기에 은혜를 저버리고 신앙까지 팔아먹는지 이것이 바로 탐욕의 무자비성입니다. 인간을 완전히 짐승보다 못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유1:10에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 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방하여 수많은 죄인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천하의 악한 폭군을 모방하여 마음에 선이 깃들지 못하게 몰아내고 죽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고 사모하는 자에게 거룩한 성령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잘 믿고 더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 악한 세상에서 온전히 구원함을 받아 우리 마음이 하늘 사람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