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 2 (계 13:12)

nam씨 2024. 3. 16. 21:18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 2 (계 13:12)

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오늘은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두 번째 시간으로 ‘세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약에서 세상을 '코스모스'(kosmos)라고 하는데 인공위성 중에 코스모스 위성도 역시 그런 의미로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코스모스의 성경적 의미는 약 세 가지로 보이는 물질세계, 혹은 인간의 타락한 마음, 혹은 세속적인 타락한 문화 등을 가리킵니다.

 
계시록에서 많이 말하는 세상이란 주로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란 사탄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간들의 악한 마음이나 타락한 이 세상 문화 등을 가리킵니다. 여기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바로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한 짝을 이루는데 오늘도 그 관계에 대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계속하여 세상이란 무엇일까요?


4. 세상은 잠자던 인간의 죄악성을 깨우고 끌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12절 상 반절“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여기 먼저 나온 짐승은 무얼까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입니다. 그런데 땅에서 나온 짐승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합니다. 그러니까 육신이 추구하는 것들을 이 세상이 다 펼쳐 보여줍니다. 그런데 권세라고 한 것은 그 미혹성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전시효과가 대단합니다. 이걸 일반인에게 보주면 동심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와 같이 거기에 인간이 추구하는 것들이 불야성을 이루며 모두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 추구하는 것들이 다 있습니다. 돈만 가지고 오면 무엇이든지 다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 눈을 파버린 사람도 있고 손을 잘라버린 사람도 있고, 산 속으로 멀리 들어가기도 합니다. 꼭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 만큼은 하나님게서 알아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사탄이 건설한 타락한 문화로 가득합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미혹하려고 했듯 세상에는 의식주는 물론 천하만국과 그 영광과 권세 명예와 부귀영화 인간의 쾌락과 방탕 등 인간의 마음에 있는 것들이 다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영상매체의 발달로 세상이 안방에까지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이 잠자던 인간의 죄악성을 깨워 타락의 길로 이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뭔지도 모르던 사람에게 세상에 눈을 뜨게 합니다. 돈에 눈을 뜹니다. 돈 때문에 그 좋던 인심은 사라져 삭막해지고, 사람들이 돈을 위해서 이상한 짓까지 합니다. 타락에 눈을 뜹니다. 모방범죄도 생겨납니다. 세뇌되기도 하고 의식화되기도 합니다. TV에서 매일 보여주는 세속적인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드라마는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한 사탄의 도구들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항하고 불순종하고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동성애가 뭔지도 모르는 자들이 동성애를 배워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감사한 마음도 없이 반사회적 반국가적인 인물로 자라게 되기도 합니다. 혹은 매체에서 자꾸만 선전해 주니까 잘못된 이방종교와 이단도 친근해지고 귀신의 영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인간의 본능에 호소하여 잠재한 죄성이 깨어 따라가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땅에서 나온 짐승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5. 세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오로지 육신을 위해서 살게 합니다.


12절 중반 절“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여기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은 누굴까요? 넓게는 세상 사람, 좁게는 육신에 속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처음 짐승이란 역시 우리 육신이나 육신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크게 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이 우리 마음에 호소하므로 자기 육신적 쾌락을 위해서 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타락한 세상에 산다면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 물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맹모삼천지교라 했습니다. 맹자 어머니가 맹자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이사를 세 번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신사임당과 같이 중국에서는 맹자의 어머니가 전형적인 어머니상으로 숭배되어왔습니다.

 
먼저 살던 곳은 묘지였는데 맹자가 매일 묘지에서 장례하는 것만 보고 공부는 하지 않고 아이고 아이고 장례 흉내만 내는 것입니다. 이래서 안 되겠다 싶어, 이번에는 시장으로 이사하자. 그랬더니 이번에도 공부는 하지 않고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 흉내만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해서 학교 글방 근처로 이사했더니 거기서 맹자가 아이들을 공부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타락한 세상이 미혹력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장 좋은 피난처는 교회이고, 다음은 가정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풍조를 막아주는 방파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생활 잘해야 합니다. 교회에 세속이 틈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은 서로 기도해 주며 돕기도 하고 감독의 기능도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로 인해 함부로 못하고, 부모는 자녀로 인해 조심하며, 부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깥세상 역시 우리가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소돔으로 이사했던 롯을 보세요. 의인 롯이 한 번 잘못 판단했다가 얼마나 손해를 보았습니까? 벧후2:6-8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세상에 만연한 죄 때문에 마음 상했습니다. 의인 롯이라 한 것을 보면 롯이 타락하진 않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세상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우리를 부추겨 육신을 위해서 살라고 미혹합니다. 그래서 빌3:19에 “저의 신은 배요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것이 바로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더라는 의미입니다.


6. 세상은 우리가 말씀 떠나 무디어진 양심을 환영합니다.


12절 후 반절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여기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란 누구를 말한 것일까요? 14절을 참고하면 후자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짐승이 죽게 될 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가 나았습니다. 14절에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칼이 무엇일까요? 칼은 말씀이나 신앙양심입니다. 히4:12-13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칼에 상했을 때는 세상이 미혹하지 못했는데 이제 나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미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서 늘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죄도 죽고 세상도 나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장악하고 있을 때는 세상은 미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교회를 점점 멀리하고 죄를 한 번 두 번 짓게 되고 그러다가 점점 양심이 무디어져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될 때 본격적인 타락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119:9-11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했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87세 때, 알렉산더 메즈어라고 하는 분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죄가 아니면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는, 하나님이 아니면 원하는 것이 전혀 없는, 그런 전도자를 내게 백 명만 주십시오. 그 사람이 성직자이든 평신도이든 관계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지옥의 문을 부술 수 있고,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먹이면 그런 사람이 됩니다. 얼마나 잘 먹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딤후3:15-17에 “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요일2:15)고 했습니다. 말씀 떠나고 교회 떠나면 하나님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과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에게서 잠자던 죄악성은 살아나고 더욱 타락하게 된다는 사실 꼭 기억하시고 하나님과 그 말씀을 더 가까이 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