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6 (계 13:6)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6 (계 13:6)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이 시간에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라는 제목으로 오늘은 “육신의 훼방”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정적 관점에서 볼 때 육신은 괴물과 같은 짐승이다. 잘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 신앙생활을 얼마나 훼방하는지 모른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요약입니다. 참고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이해하려면 계12:17절과의 연관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계12:17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했는데 그 말씀 후에 나오는 말씀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입니다. 그러니까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이란 곧 육체를 말합니다. 즉 사탄이 우리를 타락시키려는 최후의 방법으로 지상에 남아 있는 우리 육신을 이용한 시험입니다.
그럼 육체가 어떻게 훼방할까요?
21. 잘못된 입술로 훼방합니다.
6절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여기 비방은 개역성경에서는 훼방으로 번역된 낱말입니다. 짐승이 하나님을 훼방했는데 입을 벌려 훼방했습니다.
그리고 “입을 벌려”는 성경에 대개 부정적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사9:12에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모두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신11:6에는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에게 하신 일 곧 땅이 입을 벌려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장막과 그들을 따르는 온 이스라엘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삼키게 하신 일이라"
그러니까 여기서의 입을 벌려는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하신 말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하형입니다. 즉 예수님처럼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말이나 추한 말로서 닫아야 마땅한 어리석은 입술을 가리킵니다. 복 받고 살려면 잘못된 입술의 훼방을 막아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잠12:14에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했고, 잠13:2-3에는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했습니다.
또 잠18:6-7에는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했고 잠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했습니다.
마12:36에도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라” 했고, 벧전3:10에는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쁜 말은 일절 금해야 합니다. 대신 좋은 말은 자주해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고 했기에 신앙생활에 음성을 자주 사용해야 합니다. 성도에게서 음성을 빼앗아 버린다면 그 믿음은 마치 군대에서 구호와 군가를 제거한 것과 같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믿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은 진리에 대해서는 열리고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닫혀져야 합니다.
22. 육체는 잘못된 소욕으로 훼방합니다.
6절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여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며, 하나님의 이름이란 바로 하나님 자신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 그 이름은 동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했다란 하나님을 훼방함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육신의 속성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 그 속성입니다. 그래서 갈5:17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우리 육체의 소욕을 극대화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헛된 무엇에 깊이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좋은 일에 열심하는 것은 좋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면서가지 하는 것은 시험입니다. 너무 열심해서 기도할 시간도 힘도 마음도 여유도 없다면 그것은 시험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큰 시험은 우리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그런데 육체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과 늘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겸손을 원하는데 육신은 교만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충성을 원하는데 육신은 좀더 자라 좀더 눕자 더 편하게 살자고 편의를 추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의 사람 하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데 육체는 땅의 사람 세상의 사람이 되길 좋아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하면 세상 길로 달려 갑니다. 이 육신의 훼방을 깊이 경계해야 합니다.
23. 성령의 전을 더럽힘으로 훼방합니다.
6절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그의 장막이란 성전을 말합니다. 왜 육신을 설명하는 본문에서 성전이 나올까요? 우리 마음은 물론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고전3:16-17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전입니다.
그럼 무엇이 성령의 전을 더럽힐까요? 우리 육신적인 마음으로 짓는 죄가 성전을 더럽힙니다. 느 13장을 보면 제사장 엘리아십이 원수 도비야를 하나님의 전의 거룩한 보물 곳간에 별장을 차려 주다 느헤미야에게 발각이 되어 내쫓김을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에 온갖 악한 생각과 우상과 비진리들을 허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도비야를 끌어들인 죄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는 이스라엘의 성전과 같이 항상 말씀과 찬송과 기도로 가득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과 같이 더럽히고 육신에 치우치게 되면 하나님의 성전을 훼방하게 됩니다. 성전이 성전 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24. 육신은 땅의 것으로 훼방합니다.
6절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마지막으로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했습니다. 여기 하늘에 사는 자가 누굽니까? 영적으로 보면 결국 예수 믿는 우리 자신을 가리킵니다. 믿는 자는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빌3:20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하늘에 있다 했습니다. 골3:2-3에도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몸은 땅에 있어도 우리 영은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시민처럼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천국 시민과 동일한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삶을 방해하기 위하여 땅에 속한 육신을 자극하여 모든 것을 이 땅 중심으로 살게 하려고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모든 관심이 땅에 것에만 있고 땅에 것만 소망하다가 하늘의 것을 다 잃게 만듭니다. 눅 16장의 부자 역시 이 땅에 것만 소망하다가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미혹을 받으면 땅에 속한 것만 구하게 되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미혹이 지남철처럼 강하게 끌어당기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지 않으면 누구나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 육신은 사탄에게 이용 당할 약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약점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신 육체를 잘 훈련하고 관리하여 훼방꾼이 아니라 늘 깨어 말씀 보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귀히 쓰는 도구로 만들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