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복 있는 사람(1)마5장1-5

nam씨 2015. 7. 18. 14:20

복 있는 사람(1)51-5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자신이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좋은 터에 대한 욕심이 대단합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풍수지리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좌청룡 우백호에 배산임수(背山臨水)등 죽은 사람의 묏자리까지도 명당을 찾고, 많은 돈을 드려 이장을 하기도 합니다. 장래를 보장받기 위한 노력들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육신적인 삶은 물론이거니와 영적 삶의 장래를 위하여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일까요? 신약 본문 마태복음의 말씀은 주님의 유명한 산상수훈의 내용 가운데 팔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이 왕관이라면 팔복은 왕관에 박힌 다이아몬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팔복에 관한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 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팔복의 내용을 보면 마치 등산가가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가 기쁨을 만끽하는 것처럼 더 높은 복의 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오늘은 처음 세 가지의 복에 관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심령이 가난한자의 복입니다.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천국은 너희 마음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잠언 4: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했습니다. 마음의 평안과 행복이 없으면 천하가 다 있다 해도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에 평안과 천국이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마음의 천국을 위해서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심령의 가난이란 무엇일까요? 원문에는 절대적 빈곤 상태의 거지인 프토코스입니다. 이 심령의 절대적 가난이 무엇일까요?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살기가 나아지니까 주님을 찾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전도하기도 어렵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주님을 가까이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령이 다들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매달리고 사모하지 않아도 살만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없이 살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사모하며 경외해야 합니다. 이것이 절대 빈곤의 마음을 가진 심령의 가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있는 마음은 첫째, 겸손입니다. 겸손은 주님 앞에서 가지는 마음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을 만나러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하나님은 자신의 생생한 모습을 영광스럽게 그 성전에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천사들의 찬송소리와 함께 주의 영광이 비취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는 순간 땅에 거꾸러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쳤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 죄인인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때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칭찬하신 욥이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42:6)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가 주 예수님을 만나던 날 밤이 맞도록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 곁으로 다가오셔서 베드로야! 그물을 깊은 곳에 내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베드로는 엎드려지며 말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교만하고 혈기 등등한 사울이 다메섹에서 빛 가운데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이 죄인 괴수 인 것을 깨닫고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구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면 이처럼 겸손해지게 됩니다. 둘째, 주님 은혜를 수용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필요함을 알기에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의 도우심을 받게 됩니다. 가난한 마음이란 밖에서부터 오는 도움을 겸손히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치료를 수용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교만한 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치료가 필요한 것도 모르고 주님 은혜를 거절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은혜를 거절하는 자들에게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9:12)고 하셨습니다.

 

셋째, 주님의 기대와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는 은혜를 수용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대와 부르심에 응답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은혜 받은 자들에게 기대하십니다. 나를 들어 쓰시려 할 때 이사야 선지자처럼 주여!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을 때 주저하지 않고 따랐던 제자들처럼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이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은혜를 받고, 주님만 의지하여 살며,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의의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런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애통하는 자의 복입니다.

 

5: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여기서 '위로'(파라칼레오)라는 말은 '곁으로''부른다'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께서 곁으로 부르셔서 즉 다가오셔서 위로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 때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심령으로는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억울하고, 답답하고 힘든 문제를 혼자 안고 있지 말고 다 하나님 앞에 눈물로 쏟아 놓으면 놀라운 위로가 임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우는 것보다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이상구박사가 웃을 때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와 건강해진다는 말을 유행시켰습니다. “웃음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많이 웃으면 젊어지고, 건강해 집니다. 많이 웃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웃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바로 애통입니다. 7:3"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웃어도 고쳐지지 않는 병도 울면 고쳐집니다. 태산 같은 문제가 앞을 막아도 울면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보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일본의 류마티즘 권위자 요시노 신이치 교수는 울음을 치료에 적용해 본 결과 류마티즘의 원인인 인터로킹 식스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소함을 발견했습니다. 일본 토호대 아리타 히데오 교수는 눈물을 흘리면 속이 후련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순간 인간의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다가 눈물을 흘린 직후 정상인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울어본 사람만이 웃을 수 있습니다. 어느 치료사가 쓴 웃음보다 큰 눈물치료, 울어야 삽니다.”라는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만난 수많은 암 환자들 중에서 가장 낫기 힘든 환자는 바로 마음이 완전히 돌처럼 굳어진 사람입니다. 고치기 어려운 환자는 말기 암 환자가 아닙니다. 마음과 영혼이 굳을 대로 굳어져 감정이 완전히 말라 버린 사람입니다. 항암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의 치료입니다. 눈물은 하나님이 주신 천연항암제입니다. 저는 오랜 전부터 웃음치료와 함께 울음 치료를 해오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치료들은 육신의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주신 아름다운 선물중의 하나가 웃음과 울음입니다. 웃음도 건강에 효과가 있지만 우는 것 역시 너무나 건강에 효과적입니다. 울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때 정화되어 갑니다. 울어야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울어야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울어야 살 수 있습니다.” 라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눈물이 하나님 앞에서 울 때 유익이 되고 가치 있는 눈물이 됩니다. 무엇보다 회개의 눈물이 귀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죄 사함의 길과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애통하는 회개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자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에 반드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영국에 크롬웰이란 유명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 장군은 군인이면서도 예수를 잘 믿었고, 전쟁 중에도 반드시 주일을 지키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 크롬웰 장군이 어느 주일 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엘 갔습니다. 그때 장군이 앉은 좌석 바로 옆에 한 거지가 와서 앉으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장군의 부관들이 못 앉도록 제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군이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한 종류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이 한 종류의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나와 우리의 문제인 죄를 해결하기 위한 일에 모든 신경을 써야한다." 결국 '누구나 주 앞에 나오면 다 같은 죄인인데 무슨 자리를 골라 앉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따르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받고 귀하게 쓰임을 받는 사람은 지은 죄를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죄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가 없고, 가까이 갈 수 없으니 사랑을 받을 수도 쓰임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다윗은 시6:6-7절에서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말은 자신이 철저하게 죄인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자기 죄로 인해 근심하게 되었고 대적에게 고통 받게 되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회개할 줄 모른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지만, 회개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종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3:22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물리치시고서,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적이 물러가고 위로가 임합니다. 다윗이 범죄했을 때 그의 소생의 자식들까지 대적이 되어 그와 맞서게 되었습니다. 죄는 징계를 불러오고, 고난과 수치를 당하게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대적이 물러가게 해 주시고, 고난이 떠나가게 해 주시며, 사랑과 위로로 감싸주십니다. 시6:10절에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했습니다. 태산 같은 문제가 앞을 막아도 울면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보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도 눈물의 기도를 드려 고침 받았습니다.

 

51:7"하나님의 구하는 제사는 상한심령이라" 하셨습니다. 4:9에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애통하면 복이 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애통함으로 복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3.온유한 자의 복입니다.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했습니다. 온유는 헬라어로 프라우테스인데 이 용어는 잘 훈련되고 잘 길들여진 가축에 사용되었습니다. 자기 고집을 죽이고 주인의 뜻대로 움직이는 훈련된 가축처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온전히 자기를 낮추시고 순종하신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네 마음에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는 온유가 아나우인데 이 용어는 비천한 억압된 노예 상태를 말하며 자기를 하나님의 비천한 종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이웃에 대하여 노하지 않고 교만한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자기를 대항하는 자들에게 악감을 품지 않았던 것도 그가 온유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12:3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온유한자에게 있는 것은 첫째, 순종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40:8"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온유한 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고, 그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여 삽니다. 둘째, 복과 존귀함이 따르게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부활의 영광, 승천의 영광, 하늘 보좌 우편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구약 본문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썼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목동에서 왕의 자리로 높이시고, 백성들의 존경 받는 자로 높여주셨습니다. 기왕이면 기쁨으로 순종할 때 주님의 기쁨이 되고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여동생 이윤준 선교사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이 선교사가 믿지 않는 남편과 결혼하여 남편이 도박에 빠져서 집에 들어오지 않아 금식기도를 밥 먹듯 했고, 본인은 자궁암과 세 번의 교통사고와 류마치스와 대상포진으로 연탄불을 지피고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고난이 극심했다고 합니다. 이 때 이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한 자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6세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4년간 선교사로서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사명에 순종하였을 때에 간암에 걸린 남편을 치유시켜 주셨고, 그가 예수 믿고 섬김을 기뻐하는 훌륭한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변하니 다 변했습니다. 순종의 온유함으로 회개하니 고난이 물러가고 모든 것을 형통케 해주셨던 것입니다. 셋째, 땅을 기업으로 얻는 복을 받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사납고 힘세고 무자비한 자가 폭력으로 땅을 차지할 것 같이 생각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착하고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양보하는 사람이 땅을 잃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나운 자는 현재 이익을 손에 얻는 것 같지만 하나님과 같이 하지 않습니다. 양보하고 빼앗긴 온유한 자가 잃어버린 것 같지만 하나님과 같이 하시기 때문에 종국에는 하나님이 축복으로 돌이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높이면 낮출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가 이기는 자인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과 폭력으로 유익한 것을 다 취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얼마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악을 선으로 변하는 기적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카에게 양보한 온유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올 때 온유한 마음으로 싸우지 않고 계속 양보한 이삭에게 100배의 소출을 거두게 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37:1-2"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사나운 짐승들이 잘살 것 같으나 실상 보면 사나운 짐승들은 수도 적고 험한 곳에 삽니다. 사자나 범이나 이리들은 들판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고산절벽을 타고 다니면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숫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동물은 수도 많고 평탄한 곳에 삽니다. 가장 온유한 동물이 양입니다. 양은 물고 찢을 이빨도 없고 받을 뿔도 없고 잘 뛰어갈 다리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 동물 중에 제일 많은 수가 양입니다. 양은 목자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평탄한 들판에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고 평안하게 삽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 닮은 온유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자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첫째, 겸손이 있고, 둘째, 주님 은혜를 수용함이 있고, 셋째, 주님의 기대와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애통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애통은 첫째,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받고,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며, 셋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적이 물러가고 위로가 임합니다.

 

.온유한 자입니다. 온유한 자에게는 첫째, 순종하는 마음이 있고, 둘째, 복과 존귀함이 따르게 되며, 셋째, 땅을 기업으로 얻는 복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