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보좌 앞으로 사6:1-13, 히4:9-16
은혜의 보좌 앞으로 사6:1-13, 히4:9-16
아일랜드의 한 청년이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사랑하는 약혼녀가 익사하는 아픔을 당했습니다. 그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이 청년은 아픔의 장소를 피하여 캐나다로 갔지만, 그곳에 안주하기도 전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중병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죽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자기를 향하여 토네이도처럼 몰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 청년은 힘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세요. 응답해주세요.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하며 결단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와 평화가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이때 떠오른 영감은 뒤에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찬송가 369장)라는 유명한 찬송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향에 전화해서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을 때, 중병을 앓던 어머니가 거짓말처럼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조지프 스크리븐입니다. 스크리븐이 울부짖으며 드린 기도는 어머니를 살려내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기도하다 큰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 본문에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큰 은혜를 체험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1.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성결한 자가 됩니다.
구약 본문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받은 은혜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 당시는 유대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16세에 왕위에 오른 웃시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백성을 다스렸고, 블레셋, 암몬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고, 망대를 세우고 우물을 파서 국가를 번영케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 선지자의 지도를 받아가며 선정을 베풀었고,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졌다"(역대하17:15)고 했습니다. 이러한 웃시야 왕은 온 나라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50년 동안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렸습니다. 이런 왕이 죽음으로 국가적으로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반면에 주변의 다른 나라들의 세력은 점점 막강하여지고 있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불안해졌습니다.
당시 그러한 상황에서 이사야는 기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성전에 들어가 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전에도 수없이 성전에 드나들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높이 들린 영광스런 보좌와 하나님을 섬기는 스랍들과 찬양하는 소리와 진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화로다, 나로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말하며 자신의 죄로 인해 괴로워했습니다. 자신이 의롭고, 깨끗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자 자신의 죄로 인해 너무 추하고, 부끄럽고, 비참한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어두운 데서는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다가 밝은 빛 가운데 나오면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 앞에 서면 속에 감추진 은밀한 죄까지도 다 드러나게 되어 자신이 큰 죄인인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슬퍼할 때 하나님께서 스랍을 보내어 제단 위에 불집게로 달아오른 숯불을 집어다 이사야의 입술을 데게 합니다. 제단 위에 있는 숯불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 받쳐지는 소나, 양이나, 염소, 비둘기 같은 제물을 태우는데 쓰는 것입니다. 이 숯불을 집어 이사야의 입술에 데었을 때, ‘네 죄가 사해졌느니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사야가 죄 사함을 받고 죄의 문제가 해결함을 받아 죄에서 자유 함을 얻어 성결한 자가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 히4:14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오셔서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죄 사함을 받는 데는 피 값이 들어가야 합니다. 레17:11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형벌이 따르게 되는데, 예수님은 이런 죄에서 해방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서 죄인의 입장에 서셨고, 죄인과 함께 멸시, 천대, 배신, 수치, 매 맞음과, 가시, 대못, 창에 찔리는 고통을 받으시며 물과 피를 다 쏟아 흘리심으로 속죄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자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성결케 되어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 백성의 신분을 가지고 살다가 영원한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 죄 사함을 받아 의인으로 성결한 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2.비전을 가진 사명자로 살게 됩니다.
죄 사함의 은혜를 받은 이사야에게 다른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8절에 보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사야는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그 부름에 응답합니다. 이사야처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와 은혜를 받고, 죄 사함을 받게 되면 하나님 앞에 자기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만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만한 그릇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어느 공동체에서든 하나님께서 나를 주님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심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자가 됩니다.
성도가 은혜 받지 못하면 사명을 깨닫지 못하거나,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사명이 주어져도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사명을 회피합니다. 신약 본문인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으나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유혹에 직면한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서신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핍박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도록 권면하는 목적으로 기록된 서신입니다. 특히 히브리서 기자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성도의 믿음의 사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확고한 믿음에 서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충만한 은혜 가운데 살게 되면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거나, 시험에 들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고,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깨닫고,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주님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삽니다. 죤 스토트 (John Stott)는 세속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복음의 위대함을 역설하였습니다. 망원경과 카메라를 들고 강변에 나가 새를 관찰하고 촬영하는 취미를 가졌습니다. 그는 새를 통해 주어지는 메시지를 모아 “새, 우리들의 선생님 (Birds our teachers)”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새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자력 비행의 새와 공기 힘을 이용해서 나는 타력 비행의 새입니다. 자기 힘으로 나는 자력 비행의 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참새, 까치, 지바구니 같은 새들입니다. 이런 종류의 새는 멀리 날지 못하고, 높이 날지도 못하고, 오래 날지도 못합니다. 늘 우리 주변에서 서성거립니다. 참새가 나는 것을 보면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푸드득 한 번 날갯짓으로 옆 나무로 조금씩 옮겨갔다가 다시 푸드득거리며 다른 곳으로 날아갑니다.
반면에 공기 힘을 이용해 타력으로 나는 새는 민가와 떨어진 곳에 살고 있습니다. 하늘의 제왕이라 부르는 독수리,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 기러기, 수천 킬로를 비행하는 알바트로스 같은 새들로, 이들은 참새나 까치처럼 피곤한 날갯짓을 하지 않습니다. 날개를 펴고 바람을 타면서 대륙을 횡단합니다. 존 스토트는 새들만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과 은혜로 사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합니다. 은혜 받고 감당하는 사명은 타력으로 즉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모두 은혜 충만이 받고 비전을 가지고 사명 감당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남은 그루터기로 살다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구약 본문 사6:11-13에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산에 가면 종종 벌목한 현장을 볼 수 있는데, 나무를 베고 나면 그 밑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게 됩니다. 나무가 베어져 이제는 쓸모없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아나 다시 나무가 되어 크게 자라나게 됩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남은 자’, 혹은 ‘그루터기’라는 용어가 종종 나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죄에 휩쓸려 살아갈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그루터기와 같은 소수의 남은 자들이 되어 함께 세상 죄에 휩쓸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그루터기를 남겨 두십니다. 이 그루터기 같은 사람만 있으면 그 단체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루터기를 통해 다시 삽니다. 이런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이 있는 곳은 영원히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유다가 범죄 하므로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의 침범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끌려 간 사람들은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학식을 갖춘 자들은 인제로 등용해 나라에 기여하게 하고, 몸이 건장한 자들은 노예로 부리고, 얼굴이 반반한 여인들은 하녀나 노리게 감으로 삼기위해 포로로 잡아갑니다. 10분의 9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잡혀 가거나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겨우 10분의 1로 보잘 것 없는 무리들뿐이었습니다. 이제 유다는 더 이상 소망이 보이지 않고 끝장인 듯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 같은 거룩한 씨를 통해 다시 일으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보잘 것 없는 겨자씨처럼 작아도 그것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미국 LA 근교에 Berry school이 있습니다. 그 학교를 세운 마르다 베리 여사는 몹시나 가난한 여자였지만, 자기처럼 가난하여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어떻게 하든지 학교를 하나 만들어 진정한 교육을 시켜보겠다고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이요,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녀가 기도 중에 생각이 나서 당시 미국에서 제일 거부로 알려진 헨리 포드(Henry Ford,1863-1947)를 찾아 가 사정 이야기를 하며 학교를 세울 돈을 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하였습니다. 이 사정을 자세히 듣던 헨리는 10전 짜리 다임 하나(우리 돈 80원)를 내밀었습니다. 거절 의사를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 대신 기도하고 한 행동인 데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으리라 믿고, 그 돈으로 씨앗 한 봉지를 사서 빈 공터에 뿌려 잘 가꾸었습니다. 그것을 추수하여 많은 씨앗을 뿌리고 몇 해를 반복하여 드디어 건물을 하나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헨리 포드를 찾아 가서 자초지종을 말한 후 정식으로 포드를 초청했습니다. 포드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 농장에 세워진 학교에 가 그 건물을 보고 큰 감명을 받고, 그 학교를 위하여 100만 불을 기부해 주었다고 합니다. 조그만 그루터기만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이 그루터기 같은 자들이 하늘나라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신약 본문 히4:9-10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했습니다. 우리도 남은 그루터기가 되어 살다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성결한 자가 됩니다.
◎.비전을 가진 사명자로 살게 됩니다.
◎.남은 그루터기가 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멘.
<2023. 09. 27.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