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천사의 맹세와 복음의 성취 (계 10:5-7)

nam씨 2023. 6. 24. 11:13

천사의 맹세와 복음의 성취 (계 10:5-7)

 

5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본문은 앞의  '구름을 입은 힘 센 천사'에 대한 계속적인 계시요, 일곱째 천사의 나팔의 서론으로, 일곱째 나팔에서 일곱 대접재앙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본문은 대접재앙의 서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맹세하는 천사의 엄한 모습에서 일곱 대접재앙이 어떤 것인지 느껴지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 패역한 세대에서 온전히 구원 받도록 하시려는 고난을 통한 강력한 성화의 은총을 가리킵니다. 일곱째 나팔의 7이 사역의 완전수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그동안 복음 나팔이 울려 퍼졌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었는데(계9:20-21) 신사적으로 다가온 복음을 수없이 듣고도(행17:11) 아직도 성화의 부름에 순종하지 않는 완악한 우리에게 고난의 연단이라는 더 강한 은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시32:9). 밭으로 말하면 길가 돌짝밭 가시밭과 같습니다. 그래서 시119:67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습니다.

 

대접재앙 서론에서 말하는 징계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1. 거룩함의 특성이 있습니다.

 

5절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바다와 땅을 밟았다는 것은 정복을 의미합니다. 바다가 세상이요, 땅이 우리 자신이나 육신이라면 우리들도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땅과 바다를 밟아야 합니다. 패역한 세대에서 실질적인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진리에 서지 않고 죄 가운데서 살아간다면 사랑의 징계가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히12:10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2. 주권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5절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이 모습은 위에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는 장면입니다(6절, 마5:34). 맹세란 그 특징이 변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징계의 연단은 우리가 원하든 거부하든 관계없이 계획대로 이루어집니다. 순종의 여부에 따라 연단이 크기는 다를지라도 연단 받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믿음이 우리에게서 온전히 굳혀질 때까지입니다. 욥의 고난 역시 시작도 마침도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비로소 눈으로 뵈옵듯 신앙의 수준이 높아지고, 나아가 완전주의에 빠진 자기 어리석음에 대한 회개와 괴롭힌 형제들을 위해 빌 때 곤경이 끝나게 됩니다.

 

3. 불가항력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5절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여기 오른손은 권세와 능력을 강조한 표현입니다(사53:1). 누구든지 이 강한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벧전5:5-6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했습니다. 마지막 나팔의 내용이 고난을 의미하는 대접재앙이라는 점에서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완악함으로 고난 받는 야곱이 아니라 온유와 순종으로 평탄했던 이삭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4. 절대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6절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 '세세[歲歲,世世]토록’이란 거듭되는 여러 대, 각각의 해를 가리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담겨 있는 낱말입니다. 옛날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살아계신 이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도 그랬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랬던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연단하시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시119:165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한 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앞날이 한없이 평탄하고 불순종할 때는 장래 역시 평탄하지 않을 것입니다.

 

5. 창조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6절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 천사가 맹세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물건들은 본래는 형체도 없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창1:2).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로 완전하게 창조되었듯 이처럼 징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되어 죄악으로 타락한 우리들을 완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징계는 하나님 말씀의 다른 형태의 말씀입니다. 이처럼 마음의 창조도(시51:10) 'word'와 'act' 라는 두 가지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히1:1-2).

 

고후4:6에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한 것과 같습니다. 약1:4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고, 책망 역시 온전케 하는 징계에 속합니다(엡5:13). 엡2:10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 했고, 다윗은 시51:10에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기도했습니다.

 

6. 신속한 특성이 있습니다.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나팔이 재림의 마지막 나팔이라면 성도는 육체까지도 지체 없이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고전15:51-52). 그러나 계시록의 일곱째 나팔이 재림의 나팔일지는 단정할 수는 없지만 본문이 강조하듯 이 마지막 나팔이 완성의 나팔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7이 사역의 완전수라는 점에서 성도를 온전케 하는 복음의 나팔임을 우선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나팔 후에 대접재앙이 다가오고, 지체하지 않는다 하셨고, 11:14에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했듯 징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징계의 손길은 누구에게든 반드시 그리고 이미 다가와 있을 만큼 신속적인 것입니다. 다만 그 순종의 여부에 따라 그 강도가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히12:7-8에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7. 완성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7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이미 언급한대로 문맥으로 본다면 일곱째 나팔이 울리면 일곱 대접재앙이 전개되는데 그 징계가 우리를 완성케 한다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은 구원의 완성입니다.

 

벧전1:8-11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한 것처럼 구원의 완성을 연구했습니다. 이 예수 안의 감격스런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징계란 다른 강요가 아니라 예수의 복음을 믿고 순종하고 끝까지 붙들도록 하는 신앙에로의 촉구입니다. 그래서 약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징계는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요(약1:2-4, 계7:14), 바울에게도 찌르는 가시가 있었던 것도 그 이유입니다(고후12: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가 온전케 되고 온전한 은혜와 복을 누릴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은혜의 손길에 대항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대접재앙 서론이 주는 메시지는 절대 순종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복음을 이해함과 믿음과 순종함만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안개처럼 사라질 무가치한 세상 것들을 훌훌 버리고 사도 바울처럼 더 온전하고 참된 가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온전하게 발견되기 위해 지체하지 말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