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부흥운동 7 (계 9:20-21)
대 부흥운동 7 (계 9:20-21)
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계속하여 “대 부흥운동”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영적 대부흥의 목표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영적사역자가 되려면 이런 영적 진리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부흥운동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걸까요?
18. 부흥운동은 회개의 운동임을 알아야 합니다.
20절에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여기 남은 사람들의 회개치 않는 완악함이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나팔 재앙이니까 말씀 안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죽어야 하는데 말씀을 듣고도 완악함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성령의 역사가 회개운동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례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구약에 사울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매번 다윗을 통해서 자기 잘못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라마나욧에서 강한 성령에 사로잡혔지만 회개에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깨달을 만큼 보았고 들었고 체험했으면서도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않고 야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라신과 벳세다가 그랬지요.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한 고라신과 벳새다가 가장 회개하지 않고 완고했습니다. 그래서 마11:21-22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고도 회개치 않는다면 어떻게 구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앞에서 우리가 가장 주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은혜의 현장에서 보면 신기한 사람들 다 있습니다. 혹시라도 은혜 받고 변화된 삶을 살까봐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편이 집안일에 열심해야 하는데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그건 가정적인 시험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내 아들이 출세하는 길로 나가야 하는데 혹시라도 은혜 받아 신학교에 간다고 하면 그건 가문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몰라도 한참 모른 사람입니다. 은혜 받으면 가정을 배반하고 은혜 받으면 다 신학교 가는 건가요? 신학교 가면 어떻고요. 그리고 자기 재능과 사명을 발견하여 그걸 따라가면 그게 성공이지 무엇이 성공입니까?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마13:15에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혹시라도 고침 받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아시겠습니까? 예수님 만나 변화될까봐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말씀을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회개하여 바로 살라고 하신 것인데 완악한 사람들은 그 복된 기회를 무시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합니다. 고후6:1-2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계시록은 그래서 신비한 책입니다. 부흥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가르쳐 주는 책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을 잘 알아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시고 영적 부흥을 주시는 것은 우리 성결을 이룰 환경이요 전도를 위한 사역의 환경이지 그 부흥 자체가 성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앞에 내가 죽어지고 죽어져서 회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9. 부흥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운동입니다.
20절에 “오히려 여러 귀신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귀신을 섬기더라는 말씀인데 이 문구에는 약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는 문자 그대로 귀신 숭배를 회개치 않음입니다.
다음은 부흥 운동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여 신비를 추구하다가 귀신운동으로 빠져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두 번째 문제가 가장 범하기 쉬운 문제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진실로 회개하고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큰 은혜를 받는 길인데 그걸 알지 못하고 능력과 은사추구에만 힘쓰더라는 말입니다.
능력을 달라 은사를 달라고 기도할 수 있지만 지나치면 사탄에게 속습니다. 그래서 매일 신비 추구의 집회를 계속하다가 악령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잘못된 신비주의 운동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올바른 성령의 은혜까지 비난 받는 일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언은사 받아 사람들이 물으려고 오면 어느 대학을 가라. 올해는 무얼 심어라.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예수점쟁이 노릇을 한 후에 남에게 많은 손해를 끼치고서야 잘못인 것을 깨닫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좋았지만 그 후에 성령 은사를 부정하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는 내가 예언을 받아보니 결과가 좋지 않더라. 그러므로 말씀의 은사 말고는 다 잘못된 것이라면서 소방대장을 자임하고 나왔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는 지난 날 예수점쟁이 생활하던 자기의 잘못된 은사활동은 깨닫지 못한 채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은사를 송두리 채 부정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걸 가지고 성경을 부정하면 됩니까?
그래서 한 번은 귀신 받아 예수 점쟁이로 또 한 번은 성령을 부정하는 소방대장으로 우리 주님을 두 번이나 욕보이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죄 중 하나는 무지죄입니다. 알지 못한 죄도 큰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4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3절에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라면서, 24-25에서는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이처럼 예언은 신앙을 지도하는 영적인 것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막힌 것을 모를 때 예언은사로 도우면 신속히 풀립니다. 진짜 예언이 잘만 되면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묵시가 없는 민족이 방종한다고 말씀과 예언은 그걸 방지해 줍니다.
바람직한 신앙운동은 말씀과 기도가 조화되어야 하고 기도의 집회일지라도 말씀으로 심령들을 바로 잡아주고 회개하는 삶에 힘써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목적을 모르기에 잘못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성령의 부흥운동은 말씀 따라 사는 운동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은혜만이 아니라 진리, 진리만이 아니라 은혜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기차가 달려도 레일을 벗어날 수 없듯이 성령의 운동도 말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부흥운동이 회개의 운동이요, 말씀대로 사는 운동임을 깊이 깨닫고 잘못되지 않고 더 아름답고 위대한 것을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