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욕망의 정체 (계 9:7-9)
세상욕망의 정체 (계 9:7-9)
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9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이 시간에는 “세상욕망의 정체”라는 제목입니다. 화가가 세상욕망을 가지고 추상화를 그린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결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의 모습이 본문에 황충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아주 괴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탄이 인간을 사로잡아 지옥으로 던져 넣는 중요한 무기 중 하나가 바로 세상욕망입니다. 딤전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했습니다. 세상 욕심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길은 세상길 넓은길 사망길 지옥길입니다.
본문의 황충이 무엇일까? 계9:11에 “저희에게 왕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혹은 요12:31에 사탄 마귀를 세상 임금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황충은 바로 세상이나 세상욕망을 가리킵니다.
점 더 자세히 세상 욕망은 어떤 것입니까?
1. 세상 욕망처럼 건장하고 일사불란한 것은 없습니다.
7절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여기서 모양은 그 특성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예비한 말들 같았다란 오랫동안 훈련시킨 기병대나 전차부대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기갑부대입니다.
전쟁을 위해 예비된 말이 끄는 전차부대는 지축을 흔들며 그 수효가 심히 많으니 얼마나 위력적이겠습니까? 전차부대가 지나갈 때면 소리는 물론 뽀얀 먼지로 뒤덮입니다. 이는 황충들의 기동력과 공격력과 무서운 힘과 돌파력 등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세상욕망처럼 강력하고 일사불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욕망의 힘은 어떤 훈련받은 군대보다 그 만큼 투철하고 진지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피로감도 없고 이유도 문제도 없습니다.
아메리카에 금이 많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갔다가 수없이 죽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강력한 힘이 있다면 바로 이 힘일 것입니다.
2. 세상욕망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왕 노릇합니다.
다시 7절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금관은 개역성경에 면류관으로 번역된 것으로 통치권을 상징하는데 그런데 금관이 아니고 금 같은 관이요, 면류관과 비슷할 뿐 참 면류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금 관에 비교했을까요? 이 욕망이 하나님 위치를 차지하고 인격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육에 속한 사람 혹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인격의 대표는 마음이요 그 마음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욕망이 마음을 섭정하여 인격의 왕 노릇을 하려합니다. 그 뿐 아니라 사람들은 이 욕망이 시키는 대로 복종합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체면이나 형벌 등 여건이 성립되지 않아 가만히 있지 마음만은 이미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 욕망은 왕의 수준을 넘어 신의 위치까지도 넘봅니다. 그래서 빌3:19에 “그들의 신은 배요” 그랬습니다.
3. 철저한 가면성을 가지고 행세합니다.
다시 7절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황충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여기서는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즉 사람도 아니면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욕망의 철저한 가면성을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면으로 자신의 욕망을 포장합니다. 겉으로는 모두 말쑥하고 교양 있는 신사 숙녀들입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온갖 욕망들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얼굴로 표출된다면 그런 흉측한 악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술가들이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추상화를 그립니다. 그러나 그 악함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잘 그린 추상화가 본문의 계시록 9장입니다.
4. 사람들이 이것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합니다.
8절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여자의 머리털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아7:5에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했습니다. 머리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남자 머리는 깎아도 볼만하지만 여자 머리는 볼품없습니다.
성경에서 머리털은 몸과 마음과 모든 정성까지도 드린다는 헌신의 상징입니다. 특히 머리는 가장 존귀한 부분이기에 그것을 드린다는 건 온전한 헌신을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긴 머리를 풀어 발을 닦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도 그랬고 술람미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머리털 같다란 사람들이 세상욕망에 그만큼 매이고 헌신적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자기 체면을 버리고 시간과 정열과 물질을 버리고 자기의 자아나 자존심과 심지어는 가족과 신앙까지도 버립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미치면 가족과 자기 생명까지도 버립니다.
에서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히12:16-17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세상 것에 바칠 헌신이 있다면 그 마음을 주님께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크게 사랑해주실 것입니다.
5. 세상 욕망은 무서운 탐욕성이 있습니다.
다시 8절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사자의 이는 무엇이든지 공격하여 씹어 삼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자의 공격력은 굶주렸을 때 나오는데 다니엘서에도 나오지만 그 때는 뼈까지도 부숩니다(단6:24).
욥38:9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했듯 젊을수록 더 강력합니다. 어린 사자가 아니라 젊은 사자입니다. 세상 욕망의 탐욕성도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걸리면 탐욕은 그 무엇도 다 삼켜버립니다.
최초로 루시퍼 천사도 이 욕망을 버리지 못하여 그 복된 지위를 빼앗겼습니다. 다윗의 경우 여인에 대한 탐욕은 그의 평화도 삼켜버렸습니다. 이 일로 두고두고 그의 왕국에 전쟁과 난리의 비극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경우 이 탐욕은 그의 왕권도 삼켜 버렸습니다.
삼손의 경우 탐욕 때문에 두 눈이 뽑히고 비참하게 맷돌을 갈았습니다. 여기에는 아담도 에서도 다 해당됩니다. 탐욕의 이빨만큼 강한 이빨은 없습니다. 이 세상 욕망이 침투하면 받은바 관직도 명예도 직분도 믿음까지도 삼킵니다.
6. 탐욕의 목적을 위해서는 양심조차 없습니다.
9절 “또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본래 흉갑은 가슴에 붙여서 창과 칼이니 화살을 막는 것입니다. 어릴 때 헛간에 흉갑이 있어서 흉갑 가지고 놀았는데 가슴을 보호하는 장구입니다.
그런데 이 흉갑이 보통 흉갑이 아닙니다. 철흉갑 같더라. 그런데 철이 나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철은 강한 것으로 짓밟고 파괴하고 지배하는 공격성이 있습니다(단7:7). 마치 로마가 철의 나라로 비유되어 온 세계를 정복함과 같습니다.
즉 이 철흉갑 같은 흉갑은 목적으로 위해서라면 도덕도 법으로도 양심조차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다 막아내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양심도 버린 마음에 철판 깐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양심에게는 아무리 말해도 호소력이 없고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공격적입니다.
마음에 철판 깔면 하나님께서도 철판을 까십니다. 신28:23-24에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그래서 사59:1-2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괴물과 같은 세상 욕망에 사로잡혀 어둠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면 다 벗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이 그럴듯한 세상 욕망에 속아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불행하다는 것을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우리의 세상 욕망 예수님의 십자가에 다 못 박혔음을 믿음으로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거룩을 따라 가장 복된 인생을 살아나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