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충의 재앙 (계 9:3-4)
황충의 재앙 (계 9:3-4)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이 시간에 “황충의 재앙”이라는 제목입니다. 지난번에 세상 욕망은 무저갱과 같다. 이 탐욕의 문을 사탄이 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탄이 시험해도 죄를 전가하지 말고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키질을 한다고 생각하고 마음 지키고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황충의 재앙을 말하는데 우리는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의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려줍니다.
인간의 고통이 어디에서 올까요?
1. 인간의 고통은 세상에서 옵니다.
3절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여기 황충이 나타나는데 황충이 세상의 상징입니다. 황충은 머리에 두 뿔이 있는 메뚜기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황충은 아무리 살펴봐도 요엘서와 같이 구약에 자주 등장하는 일반 황충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황충은 연기 속에서 나올 수 없고, 황충이 전갈과 같이 쏘는 꼬리가 있지 않으며, 황충의 먹이는 사람이 아니고 풀이며, 그리고 잠30:27에 황충은 임금이 없어도 떼를 지어 다닌다 했는데 본문의 황충은 임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임금은 사탄이라. 그러므로 황충은 영적이고 비유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황충은 과연 무엇일까요? 세상이나 세상 욕망입니다. 귀신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요12:31에 사탄 마귀를 세상 임금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눅4:6에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한 것처럼 사탄이 아담에게서 빼앗은 세상 권세였습니다.
여기 세상이란 일반 국가가 아니라 인간의 악한 심성이나 타락한 죄악의 풍조를 가리키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타락했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이 인간의 악한 마음이 고통의 원인입니다.
한문으로 황충은 누리황 황충(蝗蟲)인데 누리는 누리는 세상을 예스럽게 말하는 말입니다. 즉 온누리 지구나 세계를 가리킵니다. 약간 과장된 바가 없지 않지만 그만큼 그렇게 넓게 퍼져서 나무와 곡식에 커다란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해남에 풀무치가 즉 황충이 나타났다고 떠들썩했는데 몇 년 전에 이 고장에도 나타났어요. 감사한 것은 농토로는 오지 못하고 막아놓은 개펄에서만 살다가 사라졌습니다. 이 황충이 얼마나 식성이 좋던지 1톤가량의 메뚜기가 2,500명분의 식량을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뿌리를 보이기까지 먹어치우고는 다 먹은 후에는 함께 그 자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 또 다시 피해를 준다고 합니다.
그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욜1:4에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했는데 황충은 이렇게 비슷한 종류들보다 더욱 최후의 뿌리 부분까지도 먹어 치우는 무서운 특징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심령에 황충이 나타나면 그 심령은 이제 바닥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의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나왔으니 얼마나 새카만 녀석입니까? 그러니까 이 황충은 초목이나 갉아먹는 보통 황충이 아니라 인간의 심령을 뜯어 먹는 탐욕의 황충입니다.
이처럼 끝없는 인간의 악한 욕망이 하나님의 진노와 고통의 원인입니다. 성경에 진노가 임하는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할 때입니다. 요3:36에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했습니다.
다음은 세상 욕심을 버리지 않을 때, 롬1:18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그랬고, 골3:5-6에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하였습니다.
낮에도 기도했지만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틈새에서 선택할만한 해법이 거의 없습니다. 남북 간 대치 상태에서 미국도 버릴 수 없고, 중국도 버릴 수 없고,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 편을 가까이하면 다른 한 편이 서운해 하고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이 우리 한국입니다.
우리나라가 사는 길은 딱 한 가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사는 길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나 안티 기독교하여 하나님 배척하거나 카토릭과 하나 되어 바람나 변질된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만이라도 믿음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할 것입니다.
2. 인간의 고통은 그 죄의 결과로 옵니다.
다시 3절 하반 절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여기서는 또 다른 생물 전갈이 나옵니다. 전갈은 어떤 곤충입니까? 전갈은 사막지대 돌 밑에 사는 꼬리에 독침 가진 파충류로 쏘이면 대단한 고통과 치명적인 상해를 입힙니다.
황충의 떼, 그 자체로도 위협적인데 거기다 전갈의 권세까지 지니고 있으니 얼마나 두려운 존재입니까? 용감하기로 소문난 로마 군인들이 웬만큼 다쳐서는 소리 지르지 않는데 전갈에 쏘였을 때는 소리를 지른다고 합니다. 그만큼 위협적이고 고통을 주는 독충입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 욕망 따라간 사람들이 당하는 심령의 고통입니다. 그래서 딤전6:9-10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했고, 롬2:9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그랬습니다.
부하다고 행복할까요? 가난한 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생활의 레벨이 다르지만 마음의 짐은 가난한 자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부자들은 애완동물을 많이 기른다고 합니다. 돈이 많으면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돈에 눈독을 들이기 때문에 애완동물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대신한다고 합니다. 비참한 부자의 모습입니다. 요즘 부자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가 하면 빚을 내어 사업하다가 부도의 위기에 처한 사람의 고통도 말할 수 없습니다. 혹은 물질 때문에 가족 간에도 원수가 되고, 물질의 유무를 떠나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교만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그 마음에 다가온 근심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롯도 물질 따라가다가 얼마나 고통을 당했습니까? 벧후2:6-8에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신앙보다 물질을 택해 소돔으로 갔다가 신앙 잃고 재물도 다 붙 타 사라지고 빈털터리가 되어 소알로 피신하다 아내마저 뒤를 돌아다 보다 소금기둥이 되고 자기와 두 딸 목숨만 겨우 건진 롯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냐? 물질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택하면 둘 다 얻게 됩니다. 그러나 물질을 택하면 처음에는 잘될지 모르나 둘 다 잃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신앙을 택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얻고 물질도 얻었습니다.
물질은 그 분야를 담당하는 은사와 같아서 수입과 지출 등 물질관리 잘해야 마지막 날에 상을 받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약5:1-5에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나무가 해를 등지고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을 멀리 하면 그것이 스스로 고통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행26:14에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이것을 깨달은 사울은 회개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앞에 평강이 길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가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그 욕망이라는 황충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말씀의 신령한 눈을 가져 전갈의 권세를 가진 탐심이라는 황충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평안과 기쁨의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