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

복음의 나팔 4 (계 8:12)

nam씨 2023. 3. 4. 17:44

복음의 나팔 4 (8:12)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이 시간에도 복음의 나팔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신앙이란 일반적으로 항상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사이클이 있게 마련인데, 우리가 어떻게 나와 세상을 위해 살지 않고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깊이 묵상할 때 가능합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넷째 나팔입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나팔을 부니까 해와 달과 별들의 3분의 1이 어두워졌습니다. 일월성신에 대변혁이 왔습니다. 그 결과 낮도 밤도 그만큼 어두워졌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나팔이 우리의 가슴 속에 울려 퍼질 때 놀라운 변혁이 있게 됩니다.


복음의 나팔 앞에 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1. 가치관의 변화가 있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12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여기 해와 달과 별들은 신령한 관점에서 무엇일까요?


해와 달과 별들은 야곱의 가정을 비유할 때 쓰였던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꿈에 해와 달과 별들이 절하는 것을 보여 주셨고 이 꿈 이야기를 들은 요셉의 부모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으며 그의 형들조차도 알아차리고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즉 해는 아버지, 달은 어머니, 별들은 형제들입니다. 가족처럼 귀한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모 형제 남편 아내 자녀 손자 등 가족처럼 귀한 존재는 없습니다.


17:6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했습니다. 손자 손녀 얼마나 귀합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인도 귀합니다.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부모가 생존해 계시다면 자녀에게 정신적으로 큰 의지가 됩니다.


그러나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었습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처럼 우리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깨닫게 되면 가정에 대한 자세도 달라집니다. 가정을 사랑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가정이 하나님일 수는 없습니다.


가정을 하나님보다 사랑하면 가정이 내 영혼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또 내가 가정의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내 마음 때문에 가정이 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10:36-37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나팔 소리에 해와 달과 별들이 타격을 받아 3분의 1이 어두워집니다. 3분의 1의 훼손으로 3이라는 숫자는 의미가 성립될 수 없는 것과 같이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가정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하나님보다 가정을 더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가정에 대한 가치관이 변할 정도라면 세상에 대한 가치관은 어떻겠습니까?


이것이 예수 만난 바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3:7-9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그랬습니다.


여러분에게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있나요? 세상의 부귀나 명예나 권세나 내 생명, 내 사랑하는 가족일지라도 예수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우상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부터 나와 세상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 될 것입니다.


2. 어떤 상황에서도 주로 만족하고 살아갑니다.


12절 하반 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해와 달과 별들 3분의 1이 타격을 받으니 당연히 낮과 밤이 어두워 질 수밖에요. 그런데 당연한 사실을 언급한 이유는 뭘까요? 그건 거기에 담긴 메시지 때문입니다.


낮은 뭐고 밤은 뭘까요? 성경에 보면 낮은 형통의 때요 밤은 고통의 때입니다. 그래서 시30:5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했고, 45:7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했습니다.


그런데 3분의 1이 타격 받음으로 낮이든 밤이든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즉 이제 예수 십자가 복음에 사로잡힌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죽든지 살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마치 술람미 여인처럼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에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린다 이런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꼭 영광스런 자리에 있어서만 영광 나타내는 것 아닙니다. 그렇지 못한 아골골짝 빈들일지라도 거기서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야 합니다. 감옥에서도 찬송하게 됩니다. 환경은 악하지만 항상 즐겁게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나의 보물 삼았으므로 하나님만 잃지 않았으면 더 만족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도 좋지만 돈 때문에 하나님 잃으면 다 잃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돈보다 하나님 찾으면 하나님도 돈도 내게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잃지 않았다면 하나도 잃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삽은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73:24-25) 했고, 1:20의 바울은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했습니다.


우리는 넷째 나팔에서 마리아의 믿음을 봅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결혼을 위한 귀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의 발아래서 십자가 진리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까? 우리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 크신 사랑에 감복하여 세상에 가장 사랑하는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하나님의 종들이 온전히 십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한국강해설교연구원원문보기글쓴이: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