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말씀)대로 행하였더라 (출애굽기 71-7)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보여주시고, 그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에게 풍성한 복(평안, 건강, 재물....)을 내려주시고, 복 받은 자들이 믿음으로, 구원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말씀 하시고, 또 말씀 하시기를 계속 하십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고, 듣고 살아가는 무수한 말씀들이 구약에서는 명령이라는 단어로 자주 들려집니다. 조금 딱딱하게 보여도 말씀을 명령으로 듣고, 따를 수 있어야 신앙생활 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올바르게, 진실 되게, 그리고 곧게 나아가게 하는 잣대와도 같습니다.

 

신앙인이든, 비 신앙인이든 하나님의 말씀(명령)에 전부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명령들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무반응을 보이거나, 듣고도 따르지 않는 불순종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살펴보니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이 세 가지 이유 안에 다 포함 되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이유에 속하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1. 첫째, 명령을 내리시는 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무신론자(Atheist)라고 합니다. 시편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14:1;53:1)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스스로 똑똑 한 것 같아도 참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라는 책으로 유명한 옥스퍼드대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기 때문에, 명령이라는 것은 그저 비웃음거리밖에 안 됩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보여 줘라 그러면 믿겠다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만물 안에 계시고, 그렇게 말하는 무신론자의 주변에 항상 계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니 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존재가 인정 되지 않으면 선이 끊어진 전화기를 붙들고 애타게 119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무신론자라고 외치는 사람만 무신론자가 아니라,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전부 무신론자로 볼 수 있습니다.

 

2. 둘째, 명령을 내리시는 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관계, 그리고 대화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이른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 주변을 맴돌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 본적도 없고, 들으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길가에 뿌려진 말씀처럼, 말씀이 선포 되어도 금방 마귀에게 빼앗겨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사야 112절에,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구약의 희생제물-,,염소 등)을 요구하였느냐?나의 뜰(마당)만 밟을 뿐이다!”(1:12, 표준새번역)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임무를 완수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임어 담대히 보좌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뵙고, 만나고, 듣고, 들린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사이클(cycle)이 반복 순환되지 않으면, 우리 곁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게 느껴지고, 명령도 들릴 턱이 없습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였거나, 성령을 소멸한 상태로 세상에 속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입니다.

 

3. 셋째, 명령을 내리시는 분의 음성을 외면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시간 뿐만 아니라, 말씀을 읽고 묵상 하고나 기도 할 때, 찬양 할 때 등과 같은 경건의 시간은 물론이고,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삶의 모든 일상(, 대화, 사건, 세상 풍경 등)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참 양심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 하고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들었다, 안 들었다, 몰랐다라는 핑계를 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지금 예배 시간에도 명령이 선포되고 있고, 각자의 심령에 면을 깊숙하게 꽃아 주고 계십니다. 똑 같이 다 들었는데도 어떤 사람은 듣고 행하고, 어떤 사람은 꿈쩍도 안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주여 주여만 하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 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7:23)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고보서에서도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하나님의 명령이 이미 들렸고, 지금도 꾸준히 들리고 있고, 죽는 날까지 계속 들릴 것입니다. 알지만, 들리지만, 하기 싫어서, 기분 나빠서, 다른 일에 바빠서, 나중에 하려고....이런 불순종의 장벽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음성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회개하기를 중단 한 채, 나는 아주 잘하고 있다 라고 자기 자신에게 속임 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는 3가지 이유 세 가지, 존재를 알지 못한다(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 인식하지 못한다(성령 없거나 성령 소멸) 음성을 듣고 따르지 않는다(회개하지 않는 외식적인 신앙인) 를 말씀 드렸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나는 어떤 상황 인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세 번째가 가장 위험합니다. 말씀이 들리는데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배반하는 무서운 불순종입니다. 회개하고 순종으로 돌이키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00교회의 모든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데 최선을 다하셔서, 이 땅에서는 반석 위에 집을 짓고, 평안과 번영을 누리며 사시다가, 하나님의 나라의 문에는 거뜬히 들어 갈 수 있는 복된 영광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들을 합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정말 쉽게 변하기 어려운 고집불통, 자기 의와 자아로 꽉 차 있습니다. 습관, 인성, 언행이 한 번 고착화 되면 새롭게 되기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괜찮은데 네가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대단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모두가 고침 받고 새롭게 받아야하는 아픈 환자 일 뿐입니다. 사람 스스로는 변화되어 가기 어렵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다듬어 가십니다. 말씀과 복음은 우리를 변화 시킬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6, 7절을 읽어 드립니다. “6.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7.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아멘.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최고의 지도자들인데 명령하신 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당연할 것 같은 이 당연함이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전~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본격적으로 만나는 장면은 3장부터입니다.

 

3장에서 여호와의 산이라고 불리는 호렙(, 호레브, 다른 이름으로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첫 번째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3:10)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3:10, 표준새번역) 모세는 지금 감히 만나보지 못할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있으면서도, “감히 바로에게라고 말하면서, 하나님 보다 오히려 바로를 더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도저히 명령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4장에서는, 모세가 명령대로 즉각 행동하지 못하자, 하나님은 모세가 가져온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고, 손에 문둥병이 나타났다 사라지게 하는 기적을 보여 주시면서, 가서 그들에게 이 기적을 보여주면 그들이 믿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렇게 답변합니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아멘. (4:10) 기적을 보고도 핑계를 대면서 명령대로 행하기를 주저 합니다. 믿음이 생성되지 않아서 아직까지 전혀 움직일 마음이 없습니다.

 

5장에서는, 어찌어찌 해서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찾아가서 만나긴 했는데, 바로는 그들의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볏짚도 안 주고 노역을 더 강하게 시킵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5: 22) 모세는 명령대로 아주 조금 움직이기는 했지만, 한 번의 걸림돌을 만나자 곧바로 하나님을 대놓고 원망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6장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런 저런 말씀으로 확신을 심어 주시면서,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6:11)라고 다시 명령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의 답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6: 12) “보십시오, 저는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바로가 어찌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6:30) 참 이 정도면 일반 사람 같으면, “알았다, 관두러 관둬라고 포기해 버렸을 겁니다.

 

6장 까지만 보면, 모세는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건반사적으로 튕겨내는 듯한 무례한 말들을 마구 쏟아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장면이 오늘 본문 시작되기 전, 6장의 마지막 절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모세의 아주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명령을 따르는 것을 주저하고, 핑계대고, 불신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한탄을 서슴없이 합니다. 그것도 대놓고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모세 뿐 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완악함이고, 숨겨진 죄 성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7장에 와서모세와 아론이 명령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계기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반전을 이룬 계기가 되는 말씀이 본문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아멘. 이 말씀 속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잘 따르는 순종의 사람으로 변화 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첫 마디가 볼지어다라는 동사입니다. 이 단어(, 라아)는 구약에서 1208번이나 사용 되었는데, 가장 먼서 사용된 것은 세상을 창조 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1:4) 라고 하실 때, “보시기에라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담겨 있는 단어라는 것이 특별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뜻이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다, 주목하다, 분별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신 이유는, 지금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똑바로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으면서, 몇 번씩이나 말씀 하시는데도 집중해서 듣지 않고, 제대로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선생님들이 정신봉으로 교탁을 탁탁 치시면서 주목, 주목하면서 선생님을 바라보게 만들죠. 부모님들이 아이들 훈계 할 때도 고개 똑바로 들고 엄마 눈 제대로 봐!”라고 말하죠. 하나님도 모세를 이와 같이 다루신 것입니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지 못하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불순종의 말을 계속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선이 딴 곳으로 가 있습니다. 관심사가 하나님이 아니고 다른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 볼 겨를이 없으니 내 갈길 바쁘게 사는 겁니다.

 

여름에 선풍기를 틀었는데 회전 기능이 고장 나면 강제로 선풍기를 내 쪽으로 얼른 틀어 버립니다. 바람이 엉뚱한 곳으로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선풍기는 잘 돌아가는데, 바람이 나에게 오지 않는다면, 더위 때문에 짜증만 더할 뿐입니다. 하나님과도 시선을 마주보고 들으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세상은 온통 짜증거리, 화날 거리만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시려면, 여러분이 지금 현재 제~일 관심을 가지고 하시는 일, 그 일을 뒤로 미뤄 놓고 그 관심을 두고 있는 일 앞에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시선을 맞추십시오. 이것이 명령을 따르는 처음 단계입니다.

 

너무 오래 다른 곳만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볼지어다!”라고 크게 말씀 하시면서 강제로 우리 얼굴을 돌리 실 수 있습니다. 강제로 돌리실 때는 많이 아픕니다. 스스로 빨리 돌리십시오.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겠습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겠습니다!” 아멘.

 

그 다음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 하시기를 내가 너를 모세에게 신 같이 되게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히브리어로 엘로힘, 곧 하나님 같이 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를 진짜 신으로 만들겠다는 뜻이 아니라, 가짜 신 바로를 이기고도 남을 전능하시고, 유일 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이 직접 모세와 동행하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도, 동행하시는 하나님, 능력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814만 분의 1이라는 로또 복권은 매 주 열심히 구입하면서, 100% 당첨 확률이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느 쪽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97%가 손실을 본다는 불안함을 가지고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주식 공부에 열을 올리면서, 0.1%의 손실도 없이 평안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말씀공부에는 그렇게도 무관심 하다면, 어느 쪽이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는데도 돈, 돈 하면서 대박 부동산을 꿈꾸며 좋은 정보가 있다는 곳은 발이 부르트도록 쫓아다니면서도, 하나님이 천국 잔치를 여실 정도로 가장 기뻐하신다는 복음 전도와 구원 사역에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누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우리는 전능 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실상은 전능 하신 하나님을 뒤로 재껴 놓고 살아갑니다. 말 그대로 전지, 다 아시는 분, 전능, 다 하실 수 있는 분에 투자하세요. 하나님이 이루시고, 채우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상급까지 주신 다는데, 왜 엉뚱한 것에 힘을 낭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옆에는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 하신 신이신 우리 아버지가 항상 나와 동행하심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세상에 발휘 되어 역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동행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질 때,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을 담대하게 이룰 수 있습니다. 또 따라 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십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어 갈 때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붙여 주시고, 돈이 필요하면 재정을 넉넉하게 주시고, 환경이 필요하면 상황을 바꾸어 주십니다. 많은 간증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 들어 보였을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뭐가 필요한지 우리보다 더 세밀하게 점검하고 계십니다. “나는 입이 둔합니다. 뻣뻣합니다.” 모세가 입 만 열면 하나님 앞에 말합니다. 핑계성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모세가 말이 둔하기는 했나 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가장 약점을 형의 입을 통해 보완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약점이 있고 부족함이 있습니다. 배움도 부족할 수 있고, 재정도 궁핍 할 수도 있고, 만나는 사람의 인력 풀(人力pool)도 미미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고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보다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상황 보다 크신 하나님, 사람보다, 돈보다 크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우리에게 꼭 맞는 아론과 같은 대언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따라하겠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다 채워 주십니다!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아멘.

 

모세와 아론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렸더니, 전능자 하나님을 동행하여 주셨더니, 문제와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필요를 긍급하여 주셨더니, “명령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믿음의 사람으로, 위대한 성경 역사의 지도자로 새롭게 변화 되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새롭게 되었다면 우리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명령대로 행하는 순종의 사람으로 바꾸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 00교회 모든 성도는, 앞으로 남은 인생이 불순종과 거부, 거절의 시간이 아니라, 온전한 순종과 감사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내 자신이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우리 가족이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이루어 드리며, 천국 가는 그 길이 기쁘고 행복한 순종의 길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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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말씀 하시는 분이시고, 저희들은 듣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오니,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가고, 말씀 하시면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죽기 까지 순종으로 모범을 보여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감사하는 자는 출34:23-24, 6:4-13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언제나 예쁘게 무릎을 꿇고 또 두 손을 깍지 끼고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늘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밤에 우리 가족 모두를 지켜 주셔서 잠 잘 자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 하시는 사업도 잘 되게 해 주시고, 우리 가족들의 건강도 지켜 주세요.”

 

그런 다음에는 꼭 그 날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과 노래를 멋있게 한 번 하고는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아이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겨 그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기도가 다 끝났으면 잠자리에 들어야지, 왜 자기 전에 꼭 그렇게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느냐?”

 

아이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 내 부탁만 드려서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으로 하나님을 잠시라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서요.” 우리는 가끔 하나님께 이것도 해 주시고 저것도 해 주시고라며 무척이나 졸라대면서 많은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막상 생각해보면 우리가 받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감사에 인색한 모습으로 살 때가 많습니다. 이 어린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처럼 감사하는 자로 살아야겠습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는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하는 자는,

 

1.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그 절기는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나팔절, 속제일, 장막절 등 7대절기입니다. 그 중 이스라엘 남자들이 1년에 한 번씩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가 있는데 그것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이 절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데, 성도라면 그 의미를 바로 깨닫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공로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한 속죄의 피 공로를 믿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각인 시켜 주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절기를 통해 죄에서 해방이 되고, 사망을 넘어 참 생명 얻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절기이기에 성도라면 유월절의 의미를 마음에 새겨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때문에 내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다음은 오순절인데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오순절은 구약에서 보리의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이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시므로 신약시대에 와서 성령강림절로 불리어졌습니다. 성도가 성령 충만 하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는 자가 되고, 주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사는 자, 감사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다음은 장막절인데 이 절기는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잘 지내고 농사를 지어 결실을 맺어 가을에 추수한 것을 저장하고 지키는 절기라 하여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7일 동안 초막에 거하며 조상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장막 생활한 것을 기념하면서 이 절기를 지켰습니다. 광야에서 농사 짖지 않았어도 양식을 공급하신 하나님 은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약속하고 그 땅에 들어가게 하신 은혜, 가나안에서 많은 곡식을 거두어들이게 하신 은혜 등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성도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도우시는 은혜, 장차 들어갈 영원한 나라의 소망을 주신 은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핵심적인 은혜를 바로 깨닫고 감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모세를 통해 절기를 지키라 명하신 것입니다. 살전 5: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요,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형을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형은 은혜를 알고도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둘째형은 은혜를 알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셋째형은 은혜를 받고 감사할 줄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영국의 성서학자인 메튜 헨리는 감사는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감사하는 것을 날마다 더해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이너스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깁니다.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우리 모두 감사를 넘치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자입니다.

 

우리의 삶을 광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조금 전에 초막절을 지킬 때 7일 간 초막에 거하면서 과거 선조들의 광야생활을 몸소 체험하는 기간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하면서 수많은 은혜 체험을 했습니다. 신약 본문에 예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 역시 빈들 곧 광야에서 행하신 일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지내기에 좋은 환경이 절대로 아닙니다. 길은 불편하고, 뜨거운 햇빛이 있고, 밤에는 추위가 있고, 모래 바람이 있고, 뱀과 독충과 맹수가 있는 곳입니다. 먹을 것, 마실 것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잠잘 곳이 마땅치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거의 공급되지 않는 곳이 광야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삶의 여유가 생기고 과학이 발전하여 편리한 생활을 한다 해도 생각지 못하는 어려움을 만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납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요, 질병이 있고, 유혹이 있고, 실패가 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많은 갈등이 있는 곳입니다. 광야가 위험한 곳이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위험한 것 천지입니다. 외형으로 볼 땐 21세기 과학의 시대이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지 중독의 위험, 고독의 위험, 갈등의 위험, 우울증과 자살 충동의 위험, 파산의 위험, 질병의 위험 등 위험천만한 광야 그대로인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감사하고 살기보다 근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기가 더 쉬운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자들입니다. 불평, 원망은 불신앙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신앙인 중에도 내면에 불신앙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는 자가 되고,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노하시고 징벌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깊이 뿌리를 내린 자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그 어려움을 감당 할 수 있게 하시고, 어려움을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어려움을 통해 연단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고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찰스 코우만 여사는 애벌레가 나방이 되는 것을 1년 동안 관찰한 뒤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맨 처음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을 때, 저는 작은 구멍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나오려고 하는 나방이 너무나 불쌍해서 가위로 구멍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러나 큰 구멍으로 쉽게 빠져 나온 나방은 방구석을 기어 다닐 뿐 가엾게도 날지를 못했습니다.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쉽게 번데기에서 나온 탓이었습니다.”

 

번데기에게 있어서 고난은 나방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는데 그걸 건너뛰게 했더니 오히려 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고난이 이와 같습니다. 고난은 분명 힘든 것이고 벗어나고 싶은 것이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그 고난이 하나님 앞에서 더욱 성숙하게 하고, 온전함을 이루어 주님 앞에 합당한 자로 세우는 역할을 하게 함을 믿기에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뿌리를 내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입는 자가 됩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굶주려 있는 무리들을 주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한 소년이 가져온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많은 무리를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조각이 12 바구니에 차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 사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작은 것이지만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왜 감사하지 못하는가? 현실 속에 없는 것 보면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감사보다 불평을 하게 됩니다. 빌립은 이곳에서 이 무리들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며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빌립은 이미 기적을 본 사람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각종 병자들이 낫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빌립은 예수님을 잘 몰랐습니다. 빌립은 계산력이 빨라 200 데나리온의 떡으로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않았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주님께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안드레는 한 소년이 가져온 오병이어를 내어 놓으며 이 작은 것으로 이 많은 무리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겠느냐는 투로 말합니다. 불신앙의 사람이나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작은 것을 보면서 안 될 것, 실패할 것을 내다보며, 큰 것과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나의 작은 것을 보고 감사하지 못하고 낙심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래 이 작은 것으로는 이 많은 무리를 먹인 다는 게 어립도 없겠지하시며 맞장구치지 않으시고, 이 작은 것을 놓고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나눌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 무리들을 줄을 지어 앉게 한 다음 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이 처음 것보다 훨씬 더 많은 12 바구니에 차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나누지 못하는 것은 내게 가진 것이 없거나 적다는 생각 때문이요,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라 명령하시고 지키는 자에게 약속을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약속은,

 

*승리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34:24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열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그 땅에 정착하여 살고 큰 힘을 가지고 살고 있던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의 후손과 같은 키가 크고 거대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원주님들과 싸워 승리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며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번성하고 번영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출34:24네 지경을 넓히리니감사의 절기를 잘 지키는 자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의 지경을 넓혀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경은 바로 우리 성도들이 하고 있는 손길을 의미합니다. 학문을 하든, 사업을 하든, 정치를 하든, 교육을 하든, 기업을 운영하든, 어떤 일을 하든, 우리가 하는 손길이 번성하고 번영하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보호와 안전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34:24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세 번씩 각처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들이 집을 비어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안전하도록 지켜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보호하시면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자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풍성한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맥추감사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는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를 입는 자가 됩니다. 아멘.

 



절기를 지키라 하신 이유 34:22-24, 3:15-17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그 절기는 안식일, 유월절, 무교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 등 7대절기입니다. 그 중에 이스라엘 남자들이 1년에 한 번씩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가 있는데 그것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이 절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지켜야 하는 절기였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해방절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한 속죄의 은총을 예표 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은총을 통해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드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오순절인데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오순절은 구약에서 보리의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 은혜를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생각하며 살 것을 교훈하는 절기입니다. 이 오순절 절기에 성령강림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성령강림절로 지키게 되는데, 성도가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하나님을 첫째로 생각하고 항상 감사하면서 주님 영광을 위해 사는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막절인데 이 절기는 가을에 과일과 곡식을 추수한 후 저장하고 지키는 절기라 해서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7일 동안 초막에 거하며 조상들이 애급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장막 생활한 것을 기념하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감 같이 장차 닥아 올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기대하는 절기였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에 해당 되는 절기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장차 들어 갈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지키는 절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맥추 감사절을 맞으면서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절기를 지키라 하신 이유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절기를 지켜 순종함으로 복을 받게 하시려 하심입니다.

본문 출34:22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했습니다. 여기 지키고...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지키라는 명령의 말씀에는 지켜 순종 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지키는 자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본문에 기록된 절기를 우리가 어떻게 지키는 것이 잘 지키는 것일까요?

 

먼저, 그 날이 언제인가를 기억하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서로 사귈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이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 1년이 되는 날, 1000일이 되는 날을 기억하고 기념 이벤트 행사를 합니다. 그렇게 날을 챙기는 이유는 나에 대한 상대의 관심과 사랑을 확인하고 기뻐하며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주일을 잘 기억하고 지키는 모습이나 절기의 날짜를 잘 기억하고 지키는 모습을 보시면서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신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을 나에게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통해 아브라함의 순종 여부, 하나님께 대한 사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좋은 성도는 하나님이 명하신 날을 잘 기억하고 지키는 자가 되고, 자녀들에게도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에 그 날의 의미를 바로 알고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 제정하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대로 계승,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 절기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기가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매우 소홀해지고 형식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절기를 형식적으로 지키지 말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 하지 못하게 하라." (2:16)했습니다. 여기서 '폄론''비난'을 말합니다. 절기를 형식적으로 지킨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이요, 나아가 절기 속에 담긴 영적 교훈을 제대로 알고 계승하고, 유지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주일을 지키되 생명 양식을 통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하시며, 신령한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지키고, 절기를 지키되 절기의 의미를 바로 알고 지키므로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는 초실절 혹은 맥추절을 지키면서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지금 나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첫째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내가 주인이고, 내가 우선이 되어 나의 생각과 나의 욕심을 따라 살면서 주님을 섭섭하게 대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며 바로잡고 지켜야겠습니다.

 

그리고 잘 지켜야 믿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구체적인 공격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영적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파멸시키는데 수천 년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의 공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파악하지 못하면 사탄의 밥이 되고 맙니다. 사단은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 믿지 못하게 하여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교묘하게 접근하거나, 시기 질투를 이용하거나, 나뿐 생각을 마음에 집어넣어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하여 지키지 못하게 만들고, 바른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마귀의 속임 수에 넘어가 결국 믿음이 파선이 되고, 영생을 잃게 됩니다. 우리 모두 절기 뿐 아니라 지켜 행하라는 모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에 순종하여 지킴으로 복을 받기를 소망합니다.

 

2.감사하는 삶을 통해 복을 받게 하시려 하심입니다.

또한 절기를 지키면서 감사하는 마음 가지고 살고 있는지 살펴야겠습니다. 신약 본문에 보면 매 절 마다 감사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3:15-17“--‘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 하고, --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형편에 살고 있다면 감사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 경우에도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불신자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감사합니다. 그러나 큰 믿음의 사람은 환란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들이 됩니다.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려 십자가 지신 주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게 하시고, 믿음의 사람과 함께 하면서 때를 따라 은혜를 주시고, 보호해 주심과 진리를 알고 믿음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은혜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게 해 주신 은총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이처럼 감사로 절기를 지키는 자들에게

 

*승리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약 본문 24절에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열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그 땅에 정착하여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말한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의 후손과 같은 키가 크고 거대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원주민들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보아도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현실적으로 보면 전혀 불가능한 그림의 떡에 불과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전쟁준비가 아니었습니다. 무력 증강이 아니었습니다. 싸움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너희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절기를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절기를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약하지만 환경이 어렵지만 감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승리하도록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일 5:4대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것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승리하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승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승리하도록 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감사드리면 감사의 조건을 더해 주십니다. 역경 중에서도 감사를 잃어버리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질병에서도 승리하게 하십니다.

 

한 여자가 초등학교 교사인 일곱 남매의 맏이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신혼재미는 고사하고 첫날부터 시집살이에 허리가 휘어집니다. 매일 아침 시동생 여섯 명의 도시락을 쌉니다. 하루 종일 빨래하고 청소를 해도 끝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남편의 봉급으로는 하루건너 지내는 제사로 인해 생활은 항상 쪼들립니다. 결혼 10년 차, 원망과 푸념이 나옵니다. “나도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어느 날 갑자기 팔과 어깨에 마비가 옵니다. 상체가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회복이 안 됩니다. 드디어 자기가 말했던 대로 병원침대에 누워 남이 해주는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웃에 병문안 왔던 사람이 전도를 합니다. “낙심하고 누워있지만 말고 걸을 수는 있으니 교회에 갑시다.” 교회에 따라가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없이 눈물이 쏟아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세계에 접한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건강을 감사하지 않고 남이 해주는 밥만 먹어 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원망한 것을 회개합니다.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열어 주시니까 말이 달라집니다. 감격이 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팔이 올라갑니다. 상체의 마비가 풀렸습니다. 진짜문제는 과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나의 형편이나 처지, 그리고 나의 생각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무조건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손해가 오고, 죽는 것이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여 감사를 하면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피나는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기억해야 합니다. 승리는 우리의 힘과 노력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해도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심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호와 안전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24절에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감사의 절기를 잘 기키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안전하도록 지켜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요즈음 하나님 없이 살며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건강을 잃고 사업을 잃고 직장을 잃고 재산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보호해주시고 우리의 사업과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시며 보호해주십니다. 내 힘만 가지고 몸부림 쳐봐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때 그리스도인은 승리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보호해 주시니 홍해에서, 애급의 군대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아말랙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욥을 불 시험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 불에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해할 자가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승리의 복, 보호와 안전의 복을 받는 성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삶의 지경을 넓혀 주시려 하심입니다.

이는 번성하고 번영하는 복을 말합니다. 구약 본문 24절에 네 지경을 넓히리니했습니다. 감사의 절기를 잘 지키는 자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의 지경을 넓혀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지경은 바로 우리 성도들이 하고 있는 활동 영역을 의미합니다. 학문을 하든, 사업을 하든, 기업을 운영하든, 어떤 일을 하든, 우리가 하는 활동 영역이 번성하고 번영하도록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성도들이 감사절을 바로 지키며 감사하는 신앙으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너희가 더욱 번성하고 번영하도록 우리의 지경을 넓혀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만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재능과 지혜만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의 신앙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며 더욱 번성하고 번영하도록 축복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의지하고 눈에 보기에 좋은 곳을 택하여 소돔 고모라를 선택하여 갔지만 결국 그는 그 곳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잃는 비참한 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한 아브라함에게는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의 지경을 넓혀 주셨고, 그 땅을 그와 후손에게 주셨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백성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는 영광스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한 요셉에게 형통의 은혜를 주셨고, 한 가정의 살림을 맡았던 그에게 비록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는 했지만 전옥은 그의 됨됨이를 인정하고 감옥 안에 있는 모든 죄수들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섭리로 바로 앞에 나가 그의 꿈을 해몽하고 이제는 왕의 인정을 받고 애급 온 나라의 살림을 총괄하는 총리대신으로 그의 지경을 넓혀주셨습니다. 또한 흉년을 만난 골육 동족이 머물 고센 땅과 그들의 생활까지 다 책임지도록 하나님은 그의 지경을 넓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교만과 욕심으로 죄악의 삶을 살았던 사울 왕은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여 그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결국은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불명예스러운 부끄러운 죽음과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높이고 의지했던 다윗은 목동의 신분에서 왕의 신분으로, 반쪽나라 유다 왕에서 남과 북이 하나 되어 통일 왕국의 왕으로 그의 지경을 넓혀 주시고, 나라가 강성하여 주변으로 세력을 넓히니 그의 다스리는 지경이 넓어졌습니다. 오늘 전반기를 살아온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절기에도 하나님께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의 감사절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르틴 루터는 어느 날 저녁 작은 새 한마리가 나무 가지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작은 새는 이미 저녁먹이를 마치고 자려는 중인데 참으로 저의 잠자리는 안전하구나! 저는 내일 아침에 먹을 것에 대하여서도 걱정하는 것이 없고 내일 밤 잠자리에 대하여서도 아무 염려가 없구나! 저는 다윗처럼 전능하신 자의 보호 아래 그 몸을 맡기고 아무 염려 없이 작은 가지에서 자는 것으로 만족한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하는 작은 새가 아닌가!"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새를 보호하시듯 자녀들을 또한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고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으로 섬기면 승리자가 되고 번성 번영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신앙으로 번성 번영의 복을 누리는 성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의 시작은 축복의 시작이고, 불평불만의 시작은 저주의 시작입니다. 우리 모두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더욱 번성하고 번영하는 하나님의 복 받는 성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맥추 감사절을 맞으면서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절기를 지키라 하신 이유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절기를 지켜 순종함으로 복을 받게 하시려 하심입니다.

.감사하는 삶을 통해 복을 받게 하시려 하심입니다.

.삶의 지경을 넓혀 주시려 하심입니다. 아멘.



어린양 피의 표적 12:1-13, 9:12-22

한 등산가가 알프스 등산을 그렇게 소망했다고 합니다. 그는 번번이 실패를 했습니다. 한번은 이태리에서 온 등반가들의 안내를 받아서 자기가 원하는 알프스 산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내려오는 하산 길이었습니다. 등산은 일반적으로 올라 갈 때보다 내려올 때에 더 많이 사고가 난다고 합니다. 내려오는 상황 중에 한 등반대원이 발을 잘못 디뎌서 줄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가 아래에 있는 사람 등에 떨어지고, 그것을 보고 놀라서 두 사람이 서로 겹쳐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네 사람이 대롱대롱 로프 하나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구조해 줄 테니 조심히 기다리라고 말하는 순간에 그들이 잡았던 로프가 힘없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천피트의 계곡 밑으로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들이 잡은 로프가 왜 끊어졌는지 상황을 조사해 보니 알프스 산에서 사용하는 붉은 색의 규격 줄을 사용해야 하는데 규격 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이 등반가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줄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줄에는 대용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규격 줄을 사용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구원의 길을 말하는 종교들, 철학들, 사상들, 이단들이 있지만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제시한 길은 오직 한길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한 속죄와 구원의 길입니다. 그것이 붉은 색의 규격 줄과 같은 줄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보혈의 줄입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어린양 피의 표적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어린양은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애급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어 내 백성을 내 놓으라고 요구를 했지만 9가지 재앙이 임하기까지 바로 왕은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더욱 강퍅하여져서 점점 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애급을 심판하시고 그 가운데서 선민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드디어 여호와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애급에 거하는 그들의 장자나 생축의 처음 난 것을 죽이는 심판이었습니다. 그것은 애급 사람만이 아닌 애급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생명을 얻는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 길은 군사를 모집하여 봉기하라는 명령도 아니고, 한 밤에 몰래 도망치라는 명령도 아닙니다.

 

구약 본문 출12:3-5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했습니다. 여기 흠 없는 어린양은 바로 우리의 속죄 재물이 되신 예수님을 예표 합니다. 이스라엘백성에게 떨어진 명령은 어린양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 모두에 해당되는 흠 없는 어린양을 취하라. 여기 살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출 애급의 역사는 어린양으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의 새로운 시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했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즉 이스라엘의 역사를 출 애급을 기점으로 새로운 달력을 사용하여 새 출발하라는 명령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영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출 애급을 기점으로 이제까지의 애급의 천대받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를 받는 민족으로써 새로운 나라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이 사용하는 월력은 원래 아빕월부터 시작하는데 어린양과 함께 출 애급 한 것을 새로운 시작월로 정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새 출발은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일어나는 영적인 변화와 구원으로 비롯되는 것입니다. 어린양 예수를 믿어 구원받기 이전과 구원 받은 이후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새로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명령이 이 달 열흘에 매 사람마다 어린양을 취하되 매 식구마다 취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대표로 취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 각 사람이 어린양을 취하라는 것은 인간의 죄와 구원 문제 해결은 각자가 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길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생명의 주로 삼아야 합니다.

 

흠 없는 어린양을 잡되 수컷으로 잡으라(5-11)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분으로 흠(죄가) 없는 분이며 남자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심을 의미합니다. 그 양을 잡으라는 말은 죽음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의 고난 앞에서 큰 고민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를 하시며 할 수만 있으면 그 고난을 피하시려 하셨지만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속죄의 길도, 구원의 길도 없음을 잘 아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셔서 죽으심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을 대신 하여 멸시, 천대, 수치, 고난, 저주의 형벌을 다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도, 성경의 저자들도 하나 같이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천하 인간이 구원 얻을 유일한 길임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린양을 먹으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제자들과 최후만찬을 나누시며 떡을 떼어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라고 하셨고, 포도주를 나누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해 흘린 내 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어린양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난 분이 아닙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주님 자신이 친히 말씀하신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주님은 부활로 생명 되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자들의 구주가 되시는 분이심을, 장차 다시 오셔서 산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자들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분이심을, 주님의 말씀에 거짓이 없으심을 증거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여 영생 얻는 후사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어린양의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예표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당시 하나님께서는 애급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이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출애굽기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하기 전날 밤 쓴 나물을 먹고 누룩 없는 빵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을 잡아 그 고기는 구워먹고 그 피는 집 문밖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장자를 죽이는 천사가 애급 전역에서 장자를 죽일 때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그냥 넘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장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불순종하여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예외 없이 천사가 장자를 죽였고, 대성 통곡소리가 애급 전역을 진동시켰습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사람은 구원을 받았고 피를 바르지 않은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날을 유월절로 지지키고 있습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상징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우리 인간의 죄악을 씻었습니다. 오늘 신약 본문 히9:13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18-21절 역시 율법을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수많은 제사가 대부분 짐승을 죽여 그 피를 뿌리고 바치는 제사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레위기는 제사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말씀인데 이 제사법에는 크게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이중 번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자신의 신분과 재산의 형편에 따라 소나, , 염소, 또는 비둘기를 성전으로 끌고 옵니다. 만약 그 제물이 소라면 흠 없는 수컷, 즉 황소를 한 마리 끌고 성전으로 와서 제사장 앞에 이르러 황소를 바치는 사람이 이 황소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자신의 죄를 이 황소에게 전가시킵니다.(1:4) 그리고 나서 그 소를 잡아 제사장이 그 소의 피를 번제단 위와 단 주변 사방에 뿌립니다. 그런 후 소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는 일일이 각을 떠서 번제단 위에 불태워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이렇게 자신이 지은 죄를 씻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소나 양, 염소 등 짐승을 죽여야 했고 그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짐승의 피는 단 한 번의 죄 사함의 효력밖에 없습니다. 또 죄를 지으면 또 짐승을 끌고 와서, 다시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고 계속해서 짐승을 죽어서 또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다시 살은 각을 떠서 또 불에 태워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짐승의 피로서는 결코 우리의 더럽고 추악한 저주받은 수많은 죄를 완전히 깨끗하게 씻을 수 없고 우리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짐승의 피로서는 결코 우리 인간이 죄용서 받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짐승의 피는 더 나은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의 피의 필요성을 알려줍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이 더럽고 추악한 죄를 씻음 받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예수님 자기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완전히 속죄하신 이후에는 다시는 구약시대처럼 짐승을 잡아 피를 하나님께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 사도는 벧전1:19에서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 1:7에서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고전 문학가인 윌리암 카우퍼는 찬송가 190샘물과 같은 보혈은의 가사를 쓴 작시자입니다. 그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일은 충격으로 깊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이 때문에 자살을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한번은 안개가 자욱한 날, 아편을 사들고 템즈 강에 투신자살 할 생각으로 마차를 탔습니다. 금방 도찰할 줄 알았던 템즈강이 한 시간이나 지나도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카우퍼는 마차를 멈추게 하고 내려 보니 자기 집 대문 앞이었습니다. 마부가 길을 찾지 못하고 그 근방만 뺑뺑 돌았던 것입니다. 또 한 번은 칼로 자살하려고 결심했는데 칼을 찾아보니 멀쩡하던 칼날이 부려져 있었습니다. 목을 매서 죽으려고 한 적도 있는데 이번에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줄이 끊어져 또 살아났습니다.

이후 카우퍼는 33살 때 18개월 동안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했습니다. 이 정신병원에서 성경을 읽다가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을 읽고 성령의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같게 된 것입니다. 윌리엄 카우퍼는 그 자리에서 거듭났습니다. 그러자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의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건강도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윌리엄 카우퍼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 때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시를 지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찬송가 190샘물과 같은 보혈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음은 죄에 대한 죄 값입니다. 이 죄를 멸하는 능력은 예수님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죄와 사망에서 자유 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예수님의 보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데 그 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는 죄 사함의 능력이 있습니다.

죄는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맥베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멕베드가 왕이 되려고 던컨 왕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밤마다 죽은 던컨 왕의 환영이 꿈에 나타나 그를 괴롭힙니다. 맥베드는 잠 못 이룬 밤을 보내면서 이렇게 절규합니다. "! 아라비아 향수를 다 가지고도 이 손 하나 말끔히 할 수 없는가? 이것을 파내 버릴 망각 제는 세상에 없는 것일까?" 우리의 죄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만이 우리를 정결케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화목케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는 화목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 우리 뿐 아니라, 우리와 이웃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2:12-14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이웃과의 화목을 이룰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에 진정한 화목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주님의 보혈을 통해 열렸습니다.

 

셋째로 승리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영적 전쟁의 무기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과 예수님의 이름과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과 예수님의 이름이 영적 전쟁의 무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예수님의 보혈이 영적전쟁의 무기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영적 무기가 되는 이유는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정죄하고 참소할 때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의하면 마지막 때에 성도들과 사탄이 싸움을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2:11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했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사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보혈 찬송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넷째로 치유와 회복의 능력입니다. 예수의 피에는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질병이 영적이든,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질병과 문제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과 의술로 고치지 못하는 질병도 고칩니다. 파괴된 가정을 치유합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의 심령을 새롭게 합니다. 53:4-5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에는 우리의 모든 병과 약한 것들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이런 놀라운 은총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어린양 피의 표적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어린양은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어린양의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예표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죄 사함의 능력, *화목케 하는 능력, *승리케 하는 능력, *치유와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맥추절에 드리는 감사 출애굽기 2314-17

 

오늘 우리는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고, 앞날을 내다 볼 수 없는 두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르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기쁘게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내일 다시 보자고 웃으며 헤어졌던 사람의 죽었다는 소식이 다음 날 날아오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은혜목회정보- 97.11 설교/박성규목사

가스 폭발 사건, 자동차 사고-1년에 만 명이상이 죽음, 테러,········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그러나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든든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 날 건져 주시오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참 평안히 쉬리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였기 때문에 사고를 당하여도 구원을 받을 것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내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도 감사하다는 말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유대인들은 매년 삼차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을 따라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 첫째는 유월절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킨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는 7일 동안 발효되지 않은 딱딱한 무교병을 먹으면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로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두 번째 절기가 맥추절인데 이날은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절기로 유월절이 지난 다음 7주 후에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나서 첫 열매를 볶은 후 가루로 빻아 기름과 유황을 얹어서 화제 즉 불로 태워서 제사를 드린 날입니다. 맥추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절기는 수장절로 일년 동안 농사를 지은 것을 창고에 들이고 가을의 들판에 초막을 짖고 일주일 동안 생활하여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초막을 짖고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며 지키던 절기입니다.

이 절기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의미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고 구원받은 것을 의미하는 절기라면 신약적인 의미로는 우리들이 마귀와 죄악의 종에서 해방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은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의 맥추절의 의미는 첫열매를 거두고 첫 번째 열매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의미가 있다면 신약의 맥추절은 초대 교회가 탄생된 날이며 처음 믿는 믿음, 처음 느낀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으로 제물을 드린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수장절은 창고에 곡식을 저장하고 드린 감사라면 신약의 수장절의 의미는 주님이 재림 시에 믿는 자들을 하늘의 창고에 다 거두어들인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맥추절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하여 보고자 합니다.

 

1. 맥추감사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복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16:3“이같이 행하여 너의 평생에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하셨습니다. 또 신1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되였던 너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였나니하셨습니다. 또 신16:12 에서도 너는 애굽에서 종되였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 찌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바로와 같은 마귀가 얼마나 꽉 붙잡고 있든지 쉽게 세상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우리는 이것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을 왜 그렇게도 어렵게 생각을 하는 지, 정말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이란 그 동안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란 무엇입니까? 감사는 은혜를 받은 자들이 은혜를 주신 분에게 보답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글자를 보면 느낄 감()자에 사례할 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는 은혜 받은 자들이 고마움을 느끼고 은혜를 주신 분에게 사례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란 은혜를 받은 자들이 마땅히 기억하고 취할 태도입니다.

17:11-19을 보면 열 명의 문등병자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무섭고 더러운 문둥병에서 치료를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홉은 감사할 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사례를 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며 서운해 하셨습니다. 이는 은혜 받은 자들은 받은 은혜를 감사로 보답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살면서 감사를 잊어버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서운해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잊은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사람이며 교만에 빠진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란 은혜 받은 자들이 은혜를 보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16:12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의 서원을 꼭 갚으리로다 하셨습니다. 이는 감사는 은혜 받은 자들이 그 받은 은혜를 하나님께 보답하는 행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릴 뿐이니이다하셨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아낌없이 주신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란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69“29-30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또한 시95:1-3을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 맥추 감사절에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나도 많아서 우리의 말로나 글로서 표현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햇빛과 공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서 내려 비를 주십니다. 우리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셨습니다. 건강과 쓰고도 남는 물질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으므로 감사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죄악에서 구원하시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자녀가 되게 하셨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언제든지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늘 승리하게 하시고 성령 안에서 기쁘고 감사한 삶을 살게 하셔서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쉬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응답을 받게 되며 범사에 드리는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에 주시는 것입니다.

.힐터는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젊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 링컨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공하는 비결 중에 하나가 바로 감사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캄캄한 밤에 정전만 되도 우리의 삶이 참으로 불편한데 우리들은 지금 전기의 고마움을 잊고 살아 나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한 시간도 살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우리는 감사를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맥추절에 우리는 감사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서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농사를 짖고 있지는 않지만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감사의 예배에 참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 지니라하셨습니다. 여기서 절기는 감사절을 말하는 것으로 절기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라는 명령입니다.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늘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우리를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구원하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았으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나를 택하셔서 사랑하시고 구원하셔서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이 맥추절에 늘 감사함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106에서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까?

1)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는 잘될 때에도 감사하고 고난과 고통이 있을 때에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일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만 감사하는 것은 성숙한 감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불행과 절망 중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한 사람의 이야기는 참으로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성경에서 나오는 욥이라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동방에 의로운 사람이요 부자였습니다. 그의 소유는 약대가 7천마리요 약대가 5천마리이며, 소가 5백마리, 암나귀가 5백마리나 있고 남녀 노비도 많이 있었으며 자손의 복도 받아서 10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0남매가 한 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집이 무너져서 깔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는 악창이나서 마당에 나와서 재를 뒤집어쓰고 기왓장으로 헌데를 긁고 있었다고 하니 그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여 졌습니까?

그리고 자신과 평생을 함께 했던 아내가 이러한 고통에서 위로가 되어야 하는데 위로를 해주기는커녕 하나님을 저주하고 차라리 죽어 버리라고 조롱을 합니다. 이 때 욥은 말하기를 1:21-22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당한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감사로 승리한 위대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힘들 때 감사하십시오 고통스럽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이기는 새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오고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있을 때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인 중에서 3대 독자가 죽었습니다. 이 교회에서 심방을 하던 중 한 집사님이 슬픔에 잠겨 있는 부모와 친척들 앞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부모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3대 독자가 죽어서 가슴을 치고 슬퍼하는데 당신은 감사하다니요?” 라고 화를 냈습니다.

이 때 그는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 이 집이 감사할 이유는

1) 이 죽은 아이가 예수 믿고 천당에 갔으니 감사할 일이요.

2) 자라나서 죄를 많이 짖지 않고 죽었으니 감사할 일이요.

3) 불쌍하게 살다가 죽는 사람들도 많은데 부잣집에 태어나서 호강하며 살다 죽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모는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범사에 드리는 감사는 고난 중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용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2) 물질로 감사해야 합니다.

대하29:21 이하에서 너희가 이제 몸을 깨끗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 와 제물과 감사 제물을 여호와께 가져오라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면서 감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빈손으로 감사를 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도 잠3:9에서 네 재물과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색함이나 억지로 드리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라고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능력 우리에게 주신 은혜 안에서 우리의 능력껏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많이 드리는 자는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데 인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다윗을 보면 그는 이스라엘 왕으로 있을 때 가장 귀한 것이 생기면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합니까? 우리의 마음을 물질로 담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한 후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그후 1년뒤에 사무엘의 젖을 뗀 한나는 숫소 3마리, 가루 한 에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준비하여 성전에 올라가 제물을 드리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자신에게 귀한 복을 주신 은혜를 물질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에는 표현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의 표현을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후 한나는 더 많은 자식을 얻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 맥추절에 잊어버린 감사를 다시 찾으시고 우리 마음과 입술에서 늘 감사가 넘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물질을 드리고, 충성을 드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 닛시의 신앙 출17:8-16, 8:31-39

종교개혁 당시 독일의 유명한 화가인 알브레이트 듀러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도하는 손'이 있습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듀러는 그림공부를 위해 한 친구와 함께 도시로 나왔습니다. 두 사람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일을 모두 수행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한 친구가 듀러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친구여,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벌겠네, 자네는 그림공부에만 전념하게. 그리고 자네의 공부가 끝나면 그때부터 자네가 내 그림공부를 돕게나." 친구는 노동현장에서 돈을 벌어 듀러의 그림공부를 도왔습니다. 듀러가 공부를 마쳤을 때 친구가 말했습니다. "이미 내 손은 노동으로 굳어져 버렸다네. 이제부터 자네를 위해 기도해주겠네" 친구는 밤마다 듀러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듀러는 이 친구의 거룩한 손을 모델로 명화 '기도하는 손'을 완성했습니다.

모든 위대한 것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얻어집니다.

기도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동력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기도하는 손을 높이 들 때 응답하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오늘 두 본문 역시 그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여호와 닛시의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호와 닛시의 신앙은,

 

1.오직 하나님만 의뢰하여 주님을 나의 힘으로 삼는 신앙입니다.

구약 본문 출17:9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했습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아말렉과의 전쟁이 두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골짜기 전쟁 즉 여호수아를 중심한 전쟁이었습니다. 피 흘리는 전투의 현장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산위에 있는 기도의 싸움, 영적인 싸움을 하는 모세의 전쟁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든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모습입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께 항복합니다. 나는 사령관이 아닙니다. 나는 지휘관이 아닙니다. 이 전쟁의 승과 패는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11절을 보면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느냐? 군대의 숫자가 많으냐 적으냐, 어떤 무기로 싸우느냐 등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신약 본문 롬8:31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했는데, 역시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아무리 아말렉처럼 사나운 대적이라도, 수가 많고,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 가운데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기도를 멈추면 안 됩니다. 내 기도의 손이 올라가면 나의 믿음생활에 승리가 오고, 우리 가정에 승리가 오고, 우리 교회에 승리가 있고, 우리 민족에 승리가 있겠지만 내 기도의 손이 멈추어지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 하는 자에게 은혜가 임하면 자신의 옛사람이 죽고, 혈기가 죽고, 교만한 마음이 죽고 주님이 주시는 새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 마음으로 대적을 이기게 됩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가 은혜를 충만이 받고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훈계하는 능력을 받아 날마다 다투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 정죄 했습니다. 자기 남편을 회개시키기 위해 사십일 금식 작정기도도 했습니다. “주여 남편의 술 취함과 방탕함을 용서하시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간절히 기도 했지만 남편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정한 마지막 날 능력이 임했습니다. “딸아 네 남편의 구원받을 때와 기한을 묻지 말고 네가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네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그 여인이 받은 권능은 자기가 죽는 권능이었습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게 되었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남편이 미웠는데 이제는 남편이 불쌍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권능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아말렉과 같은 대적을 이기는 권능과 성령의 은혜로 자기를 이기는 권능이 있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능력입니다. 이 여인은 전에는 남편이 싸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남편을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게 되었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남편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술을 끊고 일찍 퇴근했습니다. 아내가 똑똑해서 남편을 변화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죽어야 상대를 살릴 수 있습니다. 남편이 새 사람이 되어 아내를 따라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과 지혜와 방법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도우시는 힘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믿음 안에서 서로 협력하는 신앙입니다.

 

구약 본문의 말씀에서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 본문을 기록한 바울 곁에도 귀한 협력자들이 있었음을 그의 서신에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시지 않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있고, 물을 주는 자가 있고, 그것을 거두는 자가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뿐입니다.

본문에서 그 협력의 모습은,

먼저 여호수아의 복종에서 보여줍니다.

17:10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멜렉과 싸우고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으로 모세를 돕는 협력자로 꼭 필요할 때마다 전쟁의 영웅으로, 모세의 수종자로, 모세의 동료로 그리고 모세의 후계자로, 그 자리에 있던 인물입니다.

 

아멜렉은 광야에서 살던 유목민으로 언제나 부족한 물 때문에 싸워야 했던 광야에서 단련된 사납고 호전적인 백성입니다. 훈련도 받지 않은 오합지졸의 군사를 이끌고 이들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호수아는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그는 애굽의 바로의 사슬에서 해방하시고,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어 배부르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 전쟁도 승리로 이끄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때문에 복종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좋은 협력자는 여호수아처럼 믿음의 사람, 복종의 사람, 충성의 사람입니다.

 

다음에 지팡이를 잡은 손을 들어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훌륭한 기도의 모습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든 손은 일찍이 이스라엘의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손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잡은 손은 10가지 재앙을 가져왔고, 바다가 갈라졌으며, 반석에서 생수가 쏟아지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하는 사람이 협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붙잡아 준 아론과 훌의 모습입니다.

본문 출 17:12절에 보면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 놓고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하였습니다.

승리는 여호수아나 모세의 공만이 아닙니다.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한 아론과 훌이 없었다면, 여호수아와 함께 싸운 군사들이 없었다면 전쟁의 승리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으로 걸어가야 할 멀고도 긴 가나안 길에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협동의 모습을 가르치신 산교육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협동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신약 본문을 기록한 바울 사도는 겸손과 온유,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 안에서 서로 협력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믿음에 굳게 서서 승리를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서 전세를 지켜보면서 손을 계속 들고 있으면 승리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양쪽에서 손을 붙잡아 줌으로 결국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롬8: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졌기에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극심하다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태도가 삶의 경쟁력을 만들고 삶의 차이점도 만듭니다.

모든 행동이나 모든 표정도 마음의 태도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눈빛도 예쁘고 표정도 예쁘고 걸음걸이도 예쁘지만 마음이 불편하면 이런 것들이 다 흔들립니다. 그 마음의 태도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고 그 사람의 현실도 결정합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확고한 믿음으로 내가 하나님을 붙들었더니 낙심하지 않았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혔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게 승리 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콜로라도의 스프링스는 목회자들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사역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처음 테드 해거드 목사님이 이곳에서 목회할 때, 칼로 찌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마다 협박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사단 숭배자들이 죽은 개나 고양이의 머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물러서지 않고 영적 전쟁을 벌였습니다. 구체적인 기도의 싸움을 벌였습니다.

전화번호부를 다섯 명 단위로 오려 그 이름을 불러가며 주님께서 변화시켜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부동산의 매물이 나오면 그리스도인이 주인이 되도록 기도했고, 미국의 많은 선교단체가 이곳으로 이사 올 수 있도록 지속적인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그 지역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실제로 현재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많은 선교단체가 본부를 두고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싸우는 사람에게 여호와 닛시승리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기 위해서 기도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협력하는 신앙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는 신앙, 믿음 안에서 서로 협력하는 신앙, 믿음에 굳게 서서 승리를 확신하는 신앙으로 승리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정리. 여호와 닛시의 신앙은,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여 주님을 나의 힘으로 삼는 신앙입니다.

.믿음 안에서 서로 협력하는 신앙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승리를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공급과 채우심의 은혜       출1613-20, 4:10-20

 

물이 귀해 오염된 물만 먹고 살던 아프리카 콩고 사람이 미국여행 중에 호텔에 묵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샤워 실을 처음 본 콩고 사람이 물이 어떻게 나오는지 몰라 호텔 종업원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는 물을 어디서 받아서 사용해야 하나요?” 그러자 호텔 종업원이 말했습니다. “저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옵니다.”

 

이 말을 들은 콩고인이 수도꼭지를 돌리니 정말 깨끗한 물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것을 보고 콩고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저것을 고향에 가져가야되겠다. 저것만 있으면 이제 물이 귀한 우리 마을도 물 걱정 없이 물을 풍성하게 저장해 놓고 사용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 사람은 밖으로 나가 렌치를 사가지고 와서 수도꼭지를 풀어 가방에 넣고 고향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았습니다. "여러분! 내가 이제부터 우리 동네의 물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마을에서도 물을 아주 풍성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수도꼭지를 힘차게 돌렸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원지와 연결 된 수도관에서 분리된 수도꼭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수도꼭지가 수도관과 연결돼 있어야 깨끗한 물이 나옵니다. 사람도 은혜와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모든 축복이 끝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맥추 감사 주일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공급과 채우심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인생길은 광야와도 같습니다.

 

흔히 우리 인생을 가리켜 광야와 같다고 비유해서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광야의 특징이 우리 인생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특징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면

첫째로, 광야는 부족한 것이 많은 곳입니다.

먹 거리도 귀하고, 물도 귀하고, 그늘도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황무지입니다.

둘째로, 광야는 위험한 곳입니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일사병과, 밤에는 추위를 견뎌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독사와 전갈 등 무서운 동물이 있고, 강도가 출몰하는 곳입니다.

셋째로, 광야는 불확실한 곳입니다.

사막의 모래 바람이 불어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길도 나 있지 않고 얼마나 광활한지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기 일수 입니다. 우리 인생도 광야와 비슷합니다. 빈손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힘이 있다고, 머리가 좋다고 내가 모든 일을 능히 대처해 나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머리가 가장 좋다는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는 천재니까 자기 인생을 알아서 척척 해결하며 살았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역시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늘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하려고 1년 이상 곳곳에 이력서를 내봤지만 청년실업자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특허사무소에 취직한 후에는 적은 월급으로 생활고를 겪었습니다. 박사학위 심사를 받을 때는 여러 번 탈락해서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가정적으로는 부부 갈등과 자녀 문제로 늘 마음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인생에는 천재도 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온갖 위험에 노출됩니다. 재난과 사고와 질병 등 이런 저런 위험들이 즐비합니다. 대적하는 자들과 사망의 골짜기도 도처에 있습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길을 못 찾아 방황하고 세월을 낭비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이처럼 광야 같은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이 그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2.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생길에 동반자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 생명의 근원, 생수의 근원, 사랑의 근원, 은혜와 진리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출애급을 한 이스라엘 백성 200만 명의 사람들이 건물도 없이 햇빛 만 내리쬐는 사막 들판에서 한 달째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큰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이 신 광야에서 먹을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라는 신기한 음식을 하늘에서 아침마다 내려 주셨습니다. 그들을 죽이시려고 광야로 걷게 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서 살게 하시려고 시작하신 길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순종하지 않고 거역하며 원망했을지라도 준비해 두셨던 만나를 내려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만나를 거두는 데는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먹는 문제를 통해서 그들을 훈련하고 시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매일 아침마다 들에 나가서 거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여러 날 먹을 양식을 한꺼번에 주신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그날의 양식을 내려주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매일 매일 너희 생명을 책임지고 너희 필요한 것을 다 책임지는데 너는 그것을 믿느냐는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도록 하는 하나님의 훈련이요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라,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또한 공생애를 시작 하시면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 하신 후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 때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6장에서 이 만나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요6:35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사람은 육의 양식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영의 양식인 말씀과 참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취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때 우리 영혼이 살게 됩니다.

둘째는, 공평하게 거두라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라고 명하셨습니다. 한 오멜은 약 2리터로 한사람 분량의 식량입니다. 한사람이 많이 가지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각자 자기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순종하여 한 오멜을 거두었지만, 어떤 사람은 욕심껏 많이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적게 거둔 자나 많이 거둔 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21-22에 보면, 이스라엘이 각기 충분할 만큼 거두어 들였는데도 들판에는 아직도 만나가 가득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양지바른 언덕의 봄눈처럼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먹고 쓰고 남을 만큼 넉넉히 물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자이십니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자들은 말씀을 어기고 다음 날까지 남겨 두었으나 벌레가 나고 냄새가 나게 되었습니다. 많이 가진 자는 쌓아 두지 말고 없는 자와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 빌4:16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했습니다. 이렇게 나누는 그들에게 19절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했습니다. 나누는 자에게 더 풍성한 것으로 주십니다.

 

셋째는 안식일에는 거두지 말고 전 날 갑절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신 날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날을 거룩한 날로 구별해야 하고, 그날 하나님께 경배하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영혼이 삽니다. 그날은 육신의 양식을 주시는 날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주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생활하는 그들에게도 안식일을 특별히 구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에는 만나를 내리지 않으셨고, 대신에 전날 갑절을 거두어 보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나 안 하나, 그들을 시험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영혼이 사는 길이고, 육신도 건강하게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일날은 돈 벌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주일은 쉽니다.” 라고 써 붙이고 과감하게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주일은 거룩하게만 사용할 거야. 주일은 세속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을 거야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결심하고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일하는 엿새 동안에 복을 부어 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면서 광야 같은 인생길에 동반자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는 항상 만족과 감사가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했습니다. 또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로 부족함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날마다 주셨습니다. 부족함이 없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주셨습니다.

 

신약 본문 빌4:11-13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했습니다. 만나의 법칙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만나의 법칙대로 사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임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첫째로 은혜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경우에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든지 넉넉하게 주십니다. 우리가 때로 모자람을 느끼는 원인은 어디까지나 너무 욕심이 많아 만족이 없는 우리 편에 있습니다. 인생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 은혜 안에 살 때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고, 만족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둘째로 믿음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이요,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하루하루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혹 우리에게 부족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주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부족을 충만하게 채웁니다. 이 믿음의 법칙을 따라 사는 사람은 내일에 대한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 배고픈 시절에 가난 한 집 아이들은 밥을 보면 배가 터지게 먹었습니다. 지금 먹으면 언제 또 먹게 될지 모르니까 배가 불룩하게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부잣집 아이들은 밥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이미 먹은 것이 있어서 배가 고프지 않기도 하거니와, 자기 부모가 다음 끼니에도 밥을 줄줄 알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먹으려고 욕심 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요, 그분이 부자요, 내일도 나의 필요한 것을 아시는 대로 채우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내년, 십 년 후, 아들, 손자가 살아갈 미래까지 염려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이 믿음을 가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자족의 법칙입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외적인 환경 때문에 감사와 불평이 생기고, 만족과 불만족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초월 하여 자족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 자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마음입니다. 고후3: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났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자족의 은혜를 배운 바울은 억울하게 매 맞고 옥에 갇혀 있을 때도 감사 했고, 몸에 가시와 같은 질병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이 자족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박국처럼 외적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 한분만으로도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넘치게 하는 자에게 더욱 감사 할 일이 넘치게 해 주십니다. 감사에 인색한 사람에게는 참 만족도 없고, 믿음도 자라지 않습니다. 은혜도, 믿음도, 봉사도, 헌신도, 감사도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지 기회를 놓치면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아내에게 달려와 말했습니다. “여보! 여보! 암소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어요.” 흥분 된 목소리로 한 마리는 붉고 다른 한 마리는 흰 송아지 라요.” 그는 너무 감사한 나머지 이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는 때가 되면 팔아서 주님께 헌금합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아내도 무척이나 기뻐하며 물었습니다. “주님께 바칠 송아지는 어느 것이에요?” 이 질문에 남편은 그런 일에는 신경 쓰지 말아요. 두 마리를 키우다가 때가 되면 그 때 정하기로 합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사색이 되어 여보!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소.” 하는 말을 듣고 아내가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은 어느 것이 주님의 송아지인지 결정하지 않았잖아요.” 이에 남편이 대답하기를 나는 말이야 벌써부터 흰 놈을 드리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하필이면 그 흰 놈이 죽어버렸어.” 하더랍니다. 감사도 때가 있습니다. ‘감사는 참으로 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자칫 때를 놓치면 감사한 마음이 어디론지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공급과 채우심으로 광야 같은 세상에서도 풍족함을 누리다가 부족함이 없는 하늘 기업의 후사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1.인생길은 광야와도 같습니다. 그런 인생길에서도 승리의 비결은,

 

2.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생길에 동반자로 삼는 것입니다.

 

3.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는 항상 만족과 감사가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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